뒤돌아 보면서 부르는 노래

위장전입에 대한 단상

조강옹 2019. 12. 24. 07:40

위장전입에 대한 단상


국무총리를 비롯해서 나라의 큰 일꾼이 바뀔 때 마다 국회에서 열리는 인사 청문회

이번에도 어김없이 대상자들의 신상에 관한 크고 작은 흠결이 먼저 언론의 도마 위에 오른다.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는 것 중의 하나가 위장전입 의혹이다.

또한 그 이유 중의 대부분이 자녀들을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함이었다니  굳이 맹모삼천지교라는 옛이야기를 들춰내지 않아도 일말의 동정심이 생기기도 하는데  작금의 현실이 그렇게 너그러울 수만 없는 것이 지난 정부시절 능력과 자질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위장전입 경력으로 인해 낙마한 국무총리, 장차관 후보자들이 여럿 있었기 때문이다.

 


오래전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적 시내 볼일을 마치고 시내버스를 타고 귀가한 적이 있었다.

이 버스가 청주역 앞에 정차를 했는데  내 아이 또래의 초등학생들이 무리지어 버스에 오르는 것이 아닌가?


시내 아이들이 방과 후에 단체로 친척집에 갈 일도 없을 텐데 웬일인가 싶어 한 아이를 붙잡고  이런 저런 얘기 물어보니 스스로 의문이 풀렸다.


내 살던 곳이 청주시 외곽에 위치하다 보니 면소재지에 내 모교이자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초등학교, 중학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다 더 좋은 학교로 전학시키기 위해 시내에 거주하는 아이들의 이모나 고모나 작은집 혹은 큰집으로 위장 전입을 하고 정작 학교는 집에서 다니다 보니 시내로 등하교를 하게 된 연유인데  이런 현상은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시작해서 중학교에 이르기 까지  줄곧 진행되었던 것이다.


당시 난 참 한심할 정도로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 무관심한 아비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일순 들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위장 전입할 정도까지 적극적이지는 못했었나보다.


이런 연유로 당시 우리 아이들의 성적은 아주 우수한 편은 아니지만 상위권을 맴돌았고 이를 위안삼아 공부 괜찮게 하나보다 했던 것인데  현실을 정확하게 들여다보면 가능성이 있거나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 중 적지 않은 아이들이 부모의 극성스런 배려로 시내에 위치한 우수한 학교로 빠져 나갔기 때문에 결국 전체적인 학력이 시내에 위치한 학교 학생들에 비해 훨씬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좌우지간 우리 두 아들은 생각 없는 부모를 둔덕에  제 아비가 졸업한 초등학교 중학교를 거쳤으므로 삼부자가 모두 초등학교와 중학교 동문이 되었다.


세월은 흐르고 큰아이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배정받은 학교는 청주일원에서 누구나 알아주는 이른바 명문고였는데  입학식 마치고 반 배정을 위한 자료를 삼기위해 치른 시험에 전교 석차 125등을 기록하였던 것이다.


풀이 죽기는 온 가족이 마찬가지였는데 아주 기특하게도 뒤에 정기적으로 치러지는 시험의 결과는  일취월장 그 자체였다.


80등, 50등으로 오르더니 급기야 30등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에 대한 또 다른 의미는 당시 학교에서  서울에 소재한 대학에 입학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GS( GO SEOUL)반을 편성해 따로 자정까지 강행군을 시켰는데 우리 아이가 아주 고맙고 대견스럽게 이 반에 편성되었다는 것이다.


아이의 석차 상승은 여기서 멈추었다.

본래 타고난 능력에 노력도가 합해져 나타난 결과였고 사전에 들춰내지 않았어도 때가 되니 자연스레 드러난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후에 아비 스스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이른바 조기교육이니 족집게 교육이니 무슨 학원에 과외에 하는 것이 제때 제때 스스로 알아가고 깨쳐야할 학문을 성급한 마음에 결과를 조기에 확인하고 싶은 학부모들의 극성으로 인해 먼저 깨치고 먼저 확인한 것 외엔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는 것이다.

끓는 물에 수제비 떠 넣을 적  먼저 넣은 놈이나 나중에 넣은 놈이나 대접에 담길 적엔 같이 담기는  이치라는 말씀이다.


그래도 무슨소리냐면서 그게 아니라 설레설레 고개 흔드는 분이 계실 줄 안다.  그래도 남들 다 하는데 아니할 수 가 없더라는 분도  계실 것이다.


그러나 내 아이의 경우를 지켜보면서 내가 느끼고 확인한 것은 아이들의 장래를 위한답시고 엄청난 사교육비 쏟아 붓는 것이 마치 한정된 용량의 물동이에 맑고 깨끗한 물이라면서 무한정 쏟아 부어도 찰만큼 차고 나면 넘치고 말뿐 부모의 욕심만큼 많이 담기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무리한 욕심의 결과가 아이의 장래는 물론 작금의 청문회에서 보듯이 본인의 출세를 위해서라도 때에 따라서 아주 치명적인 걸림돌이 된다는것이다.



야박하고 가슴아픈 얘기지만 자녀를 위한 위장전입의 경력만으로도 나라의 큰일을 맡기지 않는다는 기준이나 전통이 확립되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위장전입 경력없는 내게 나라의 큰일을 맡겨달라는 얘기는 더더욱 아니다.

굳이 제철의 과일을 들먹이지 않아도  도시가 됐건 농촌이 됐건 그냥 그 자리에서 제때 키워내야 개천에서도 용이 날것 아니겠는가?

 

조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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