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나와서 부르는 노래

조강의 제주이야기(7)|

조강옹 2019. 12. 25. 05:56

어젯밤 숙소를 찾는 과정에서 잠깐 불안했던 것 말고는 모든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는것 같이 적이 안심했다.

 

나름 흡족한 마음으로 두모악을 나와 향한곳은 산굼부리였다.

그리 머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고 한라산에 오르지 않고도 제주에서 분화구를 구경할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중 하나였다.

 

산굼부리 거의 다가갈 즈음

오른쪽 길가에 아래 그림과 같은 작은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금방 차를 세우지 못하고 지나쳤으므로 부득이 유턴하려하니 바로 산굼부리 입구였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했겠다 때도 되었으니 점심을 먼저 먹기로 하고 들어섰다.

기실 성산쯤에 전복죽을 기가 막히게 한다는 식당을 점찍어 놓았는데 우도에서 일찍 나온터라

어찌할까 망설이던 중에 두모악을 거쳐 오는 바람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들어서면서 맛있을것 같은 예감이 드는것은 집이 작고 실내가 적당히 누추했으며 주방장의  옷차림 또한 적당히 지저분하였던 것이다.

게다가 식사를 끝내고 막 일어서는 영감님 두 분이 있었는데  국물 한 방울 남김없이 비운것을 봤기때문이다. 

 

제주도에만 있다는 고깃국수

안해가 두어 첨 더 얹어준것 외엔 나온 그대로다.

국물을 한 술 떠 넣기 직전 혀가 맛보기 전에 코가 새치기했다.

돼지국밥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를 닮았는데  전혀 역겹지 않았으며 국수 가닥을 한 저범 떠 넣고 씹으니  기가 막히게 맛이 있다.  고깃 한 첨 집어 씹으면서 주방에 멀뚱히 서 있는 주방장과 눈이 마주쳤다.

 

"고깃 국수 맛있지요?"

 

그럴줄 알았다는 여유가 밴 자신감 있는 말이었다.

 

"내가 입이 좀 까다로운 편인데다 이것 처음 먹어보는것인데 정말 맜있습니다."

 

조금도 겸손하지 않은 표정으로

 

"우리 고깃국수 원래 맛이 있습니다."

 

사실과 다르지 않으니 기꺼이 인정하는것가지고는 부족해 존경의 염까지 솔솔 피어나는 것이었다.

 

아!  사진에는 김영갑선생이 있다더니 국수에는 이 미리내 주방장이 있고나!

때는 2011년 3월 11일 12시 20분 경이었다.

 

입장료 3천원

화장실은 그 규모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컸다.

 

 

16mm렌즈로 들여다 보아도 전체를  담을 재간이 없다.

게다가 사진으로 보니 입체감이 없어 실감이 나지를 않는다.  요는 엄청나게 큰 웅덩인데  사람이 판 것이 아니라 분화구라는것이다.

이걸 왜 입장료를 받는것인지 안해는 이해할수가 없다고 내내 투덜거리시는 것이었다.

전체를 전망할수 있도록 철탑 구조물이라도 세웠으면 좋으련만 하는 아쉬움을

 

멀리 한라산이 보이는 풍경으로 달래가면서 카메라에 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도의 감동과 미리내의 국수맛이 이 모든 허물을 덮었다.

 

 

서귀포 쪽으로 내려가다 문득 길옆에 표지판 하나 눈에 들어온다.

사려니 숲길 - 잠시 걸어나 보자 하고 걷는데 묘지가 눈에 들어온다.

아주 오래전 사보에 누군가가 실었던 싯귀 하나 가져다 붙여본다.

 

향기로운 아침의 부드러운 숨결도,

지푸라기 집에서 들려오는 제비의 지저귐도,

목청껏 우는 수탉의 나팔소리도, 울려 퍼지는 뿔피리소리도

이제는 그들을 그 초라한 잠자리에서 깨우지 못하리라.

 

 

그들을 위해 타오르던 난로불도 꺼져버리고,

분주한 아내가 종종거리며 돌볼 일도 없을 것이다;

집으로 온 아버지에게 달려와 옹알거리고

다투어 입 맞추려 무릎에 기어오르는 아이도 없을 것이다.

 

 - 토머스 그레이의 시골 묘지에서 부르는 비가 중 일부-

 

 

마냥 걸었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하자고 왔건만 자꾸만 커가는 욕심

내심 가보자 했던 곳이 있기에 얼마쯤 걷다가 뒤돌아 왔다.

 

새섬과 새연교

요번에도 제대로 찍었다.

엎드리면 코닿을 거리 다리를 놓았는데 저리 이쁘다.

지금까지 보아 온 다리중에 가장 아름다운 다리라고 안해로 부터 칭찬받았다. 

 

 

이어 찾아간 곳이 생선회 뜨는 시장 네티즌들에 의해 꽤 칭잔 듣는 가게중의 하나이다.

인터넷에 보기를

누가와서 2만원어치 회 떠다 먹다 배터져 죽는 줄 알았다 하였으니 나는 배터져 죽지 않게시리 1만 9천원어치만 떠주오.  이후 사람좋은 저 젊은이는 내가 회를 좋아하는것 같아 특히 자연산 돔을 한 줄 깔았으니 맜있게 드시라 했다.  진심으로 고맙다 한 마디 하고  내심 저 젊은이가 복 받도록 축원했다.

 

이쯤에서 친구로 부터 전화가 왔다.

소식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일본에 대지진이 일어나 난리라 했다.

해일이 염려되는데 제주는 괜찮으냐고...

 

고맙다 답하고  일본이 그리됐다 하니 달리 할말이 있겠나 싶어 통석의 염을 금할길 없다 전해달라하고 끊었는데 후에 보니 재앙치곤 너무 참혹했다.

같은 자연인데 어디는 재앙으로 내려주고 어디는 축복으로 내려주나?

 

그러면서 나는 보았다.

앞 좌판에 미리 떠 포장해 놓은 광어회 급히 찾는 사람들에게 8천원에 파는 것이라 했다.

회 흥정할적 모자라면 하나 사서 드시면 될것이라 했기에 잘 안다.

아까부터 서성이던  남루한 차림의 할머니 한 분이 고쟁이 속에서 꼬깃한 오천원 짜리 지폐 꺼내며 주인에게 무어라 사정하면서 팔라하는 것이었다.  차마 다가가서 엿들을 수는 없었지만 짐작컨대 몸져누운 영감님이던지  아님 나이어린 손자 주고 싶은 욕심에서 무리한 흥정 내지는 부탁 아니었겠나?

 

젊은 여주인 귀를 가까이 대고 끄덕이더니 하나 망설임 없이 성큼 집어 기꺼이 내 주더라.

옆집에 파리 날리는데 이 집만 문전성시를 이루는 것이 이 때문 아니겠는가?

 

첫날 방 없다면서 나를  당황하게 했던 민박집 또한 그랬다.

이튿날 우도행 배타러 나가면서 눈에 들어오던 그 민박집 간판

우리가 묵었던 전망 좋은 바닷가에 위치한 것도 아니고 동네 속 

수 많은 민박집속에 끼어 있는 그중 한 집만 왜 유독 이 비수기에 평일임에도 일찌감치 손으로 꽉 차는 것인지.....

 

어제 그 불안했던 숙소문제

지레 겁먹고 새섬으로 향하면서 전화로 예약했던 민박집

3만원짜리 작은 방을 예약헀는데  주인집 딸로 보이는 젊은 학생이 나오더니 예약에 착오가 있어 4만원짜리 큰방 밖에 없으며 자기들쪽에서의 문제이니 4만원짜리 큰방을 3만원에 내 주겠단다.

마다한다해서 될일도 아니고 마다할일이 아닌것 같아 그러마 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어찌하여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만을 골라서 도우시나이까? 

밥 짓고  매운탕 끓여 시원소주 한 병 반 곁들어 어제의 그것과 비하면 왕 같이 먹었다.

부른 배 두드려가며 같이 상 치우고 앉아 일찌감치 다리 뻗고 누우니 벽에 걸린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그림속의 풍경이나 그림밖의 풍경이나 오늘의 주제는 풍요 그 자체 아니겠는가?

 

 

2011년 3월 11일 (2일차)

 

이동 경로

 우도 - 모두악 - 산굼부리(점심)- 남원- 쇠소깍- 새섬 새연교- 수산시장- 숙소

 

소요 경비

 

이월

 19만 5천 2백원

 

   우도 배삯 5천 5백원 2명  1만 1천원  

   관광버스 5천원  2명  1만원

   모두악 입장료 3천원 2명  6천원

   미리내 고깃국수 6천원 2명 1만 2천원

  산굼부리 입장료 3천원 2명 6천원

  회 2만원

  매운탕 재료 4천원

  숙박비 3만원  

  소계 9만 9천원

 

 누계 29만 4천 2백원

 

이후 계획

 - 한라산 등반 이후 내 맘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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