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호천에서 부르는 노래

바로보기에 대한 단상

조강옹 2019. 12. 26. 13:50

국방부시계만큼이나 냉큼 돌아가지 않는 것이 병원시계다.

다섯 명의 환자와 그만큼의 보호자 내지는 간병인으로 옹색한 병실을 빠져나와도 마땅히 갈만한데라고는 간호사실 옆에 있는 손바닥만 한 휴게실뿐이다.

 

거기도 잠시.

몇몇 사람들 몰려와 티뷔 볼륨 잔뜩 올려놓고 들여다보거나 손전화기 꺼내 높은 음으로 통화하는 원치 않는 소리 듣는 것도 고역이다.

문득 2층에 아주 깔끔하고 커다란 휴게 공간이 있다는 생각에 그리로 내려갔다. 내친김에 물 한 잔 마시기 위해 정수기로 갔다가 옆의 잡지 거치대에서 병원에서 발행하는 얇은 잡지 하나 꺼내들었다.

 

보노라니 이곳 의사 한 분이 스탠포드 대학으로 연수 다녀온 글에 다음 한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요는 이 대학의 설립에 관한 비화이다.

옮겨보면 스탠포드라는 돈 많은 그러나 검소한 늙은 부부가 사고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들을 기리기 위해 재산을 하버드대학에 기부하기로 하고 학교를 찾았다.

 

그러나 정문을 지키던 수위는 총장의 면담을 청하는 허름한 차림의 노부부를 경멸하면서 총장님은 당신 같은 사람들을 만날 정도로 한가한 사람이 아니다.” 라면서 문전박대를 했다는 것이고 마음상한 노부부는 자신들이 손수 대학을 세우기로 하고 돌아와 세운 학교가 스탠포드 대학이라 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하버드대학에서는 정문에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Don't show favoritism 라고 크게 써 붙였다는 이야기

 

 

지난 수요일 이른 아침

침대에서 내려오시려다 낙상하신 어머니께서 119차에 실려 이곳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진단결과 아주 불운하게도 고관절 골절이라는, 그래서 인공관절로 대체하는 큰 수술을 받으셨다.

 

완치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려 적어도 한 달 가까이 이곳에 계셔야한다.

병실은 5인실이고 환자 대부분이 어머니와 연세도 크게 다르지 않고 이곳으로 오게 된 사연도 크게 다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갓 전입 온 신입 어머니를 제외하고 수행 비서인양 간병인을 하나씩 두고 있었다.

 

돈 벌 목적으로 하는 일 중에 힘들지 않은 일이 없지만 생면부지의 사람을, 그것도 노령에다 거동이 매우 불편한 사람을 24시간 밀착하여 밤낮으로 시중을 든다는 것만큼 힘든 일이 있을까? 요즘 며칠 병원을 오가면서 새롭게 발견한 사실은 그런 간병을 하는 분들이 단지 돈을 벌 욕심으로만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돌보고 있는 자신의 환자에 대한 연민과 사랑 없이 그 일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해보였다.

 

그것을 반증이라도 하듯 맞은편 침대에서 시중드시는 간병인은 환자 대하기를 마치 친어머니 대하듯 온갖 정성을 다하여 돌보는 것이 얼핏 보면 친 모녀지간이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또 다른 환자의 간병인 한 분은 외모로 판단하건대 예의 그 두 분에 비해 그렇게 보이지를 않았다. 하루 이틀 병원에 계실 것도 아니고해서 우리도 간병인을 쓰기로 결정한 마당에 저런 분이 걸리면 어쩌나 싶게 그분의 외모에서 풍기는 인상은 어딘지 모르게 어설프고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보였던 것이다.

 

같은 생각, 같은 걱정을 하면서 어제 병원에서 밤을 새운 누나에게로부터 문자가 왔다.

 

간병인과 교대하고 집으로 가는 중인데 인상도 좋고 괜찮은 분 같아!”

 

한편 안심하면서 과연 외모로 사람을 취(평가,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안해에게 물었더니 40 이후에 자신의 얼굴에 대해 책임을 지라는 말도 있거니와 자신의 생각으로 80%는 사람이 지닌 인격이나 품성, 품고 있는 생각이 외모로 표출된다고 생각한단다.

 

단지 사람들이 그것을 제대로 보려하지 않고 옷차림이나 지니고 있는 가방. 몸에 붙이고 온 금붙이 또는 타고 온 자동차 등 외모만 보고 판단하고 평가하려 하기 때문에 종종 오류를 범하는 것은 아니냐고 내게 되묻는다.

 

시일이 좀 지나면 판명이 나겠지만 예의 그 부족해 보인다고 느낀 그 간병인에게도 내가 보지 못한 진가가 있을 터인데 하버드대의 수위처럼 보이는 것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닐까?

 

불교에 팔정도라는 것이 있고 그중에 으뜸이 정견즉 바로 보아야 한다는 가르침이 종일 발 아래 채인다.

 

덧붙여 이 시간 병상에서 사고와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우리 어머니를 비롯한 모든 분들의 쾌유를 빌면서 특별히 그들의 아픔과 가족들의 시름을 덜어주기 위해 무한 사랑과 연민으로 보살펴주고 계시는 모든 간병인들에게 신의 은총이 함께 하시를 두손 모아 빌어본다.

 

조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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