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하늘을 올려다보면 남쪽으로 나는 비행기가 눈에 띄었다.
15층 아파트 거실에서도 그랬고 아침 동네 앞 태실공원을 오가는 산책길에서, 미호천 자전거 도로에서 그랬다.
그러면서 문득 두고 온 땅- 제주가 생각났다.
따지고 보면 거지반 두 해가 다 되어간다.
퇴직 직후 큰 맘 먹고 저질렀던 "제주 한달 살이"를 끝내고 돌아올적 "내 뭍에 좀 다녀오마!" 제주사람 다 된 것처럼
그렇게 두고 온 땅 - 제주에 대한 그리움이 물밀듯이 밀려온 것이다.
자전거 타고 한 사흘이면 한 바퀴 둘러볼 수 있다했다.
비행기 삯은 믿기지 않을 만큼 저렴했으며 자전거 대여료는 직접 가져가는 가는데서 오는 불편과 경비가 대여하여 이용하
는 것이 보다 편리하고 경제적이라 판단 할 수밖에 없는 선에서 가격이 책정되어 있었다.
이른 아침 청주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내 사는 아파트 위를 날았다.
"그렇지! 내가 치어다 본 것을 이제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구나 이로써 꿈의 절반은 이미 이루었나니!"
그렇게 제주에 온 것이 지난 화요일.
해안도로 따라 240km의 여정의 시작은 용두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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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봄
내 사는 곳에서 미호천 따라 금강 하굿둑 까지 158km를 자전거타고 간적이 있었다.
물 흐르듯 전부가 평지길 이었고 강변따라 난 자전거 도로가 있었다.
이른 아침 출발해서 오후 다섯 시쯤 군산 버스터미널에 도착했었다.
제주의 240km 사흘 예정하고 대략 하루 80km 단순 미호천 산술과는 처지가 사뭇 달랐다.
제주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구간이 태반이었고 힘겹게 오르막 오르고 나서 손실된 시간과 속도를 보상 받고자
하는 내리막에서의 기대감은 곳곳에 자동차가 버젓이 길을 막거나 공사구간 때론 등을 보이며 걸어가는 사람들에 의해
번번이 속상한 마음으로 브레이크를 잡아야 했다.
파란색 실선은 어느 순간 사라졌다 어느 순간 다시 나타났으며 이로 인해 때론 해안 쪽으로 한참을 내려갔다가 힘겹게 다
시금 올라와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러다가 이내 깨달음이 있었다.
파란색 실선은 자전거 도로의 표시가 아니고 자전거타고 갈수 있는 길이었다.
그 길은 주차장과 인도의 기능도 포함되어있는 표시로 읽는것이 맞다.
그렇지 않으면 자동차는 길가에 주차할 공간이 없었고 걷는 이들은 달리 마련된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맘이 편했다.
아주 오래전
울컥 토해내듯 용암이 분출돼 형성된 땅 - 제주는 가운데 봉긋하니 솟아오른 한라산 주변으로 좁게 형성된 평지에 건물
이 들어서고 도로가 나고 밭엔 작물을 심어야 하는 처지이고 보니 여럿이 나누어 써야 하는 이 연유를 알고부터 길을
막은 자동차는 서행표지로 읽고 고개 돌려 뒤를 봐 가며 차도를 이용하고 공사구간이 나타나면 쉬어가라나 보다 하고 내
려서 기꺼이 "끌바"를 자청했다.
인증센터
많은 라이더-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곳곳에 마련된 이곳에서 자신이 다녀갔다는 인정을 받기 위해 지도위에 스탬프를 찍
고 쉬었다 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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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은 자전거 짐받이에 꽁꽁 묶었다.
카메라를 가방에 넣고 가방끈과 카메라 스트랩을 같이 목에 걸었다.
청바지의 벨트로 가방을 묶고 고정시켰다.
앞서 금강길 따라 자전거 탈적 터득한 이 노하우는 자전거로 다니면서 사진 찍기 가장 편리한 방법이기도 했다.
그러나 오르막 오르면서 힐끗 쳐다본 담고 싶은 그림은 자전거를 멈추면 다시 출발할 적 힘이 부친다는 생각에 지나치기
일쑤였고 내리막 또한 그 속도와 시간 번거로움으로 포기하고 내닫기 일쑤였기에 눈에 드는 것을 다 찍기엔 역부족이었다.
지나고 보면 자그만 번거로움과 조바심으로 귀한 여유를 포기한 소탐대실의 어리석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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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는 보리가 익어가고 있었다.
삼국지를 읽다보면 군사를 일으키려는 군주에게 책사가 반대하는 근거로 보리가 익어가는 즈음의 일손 부족을 이야기한
다. 제주의 들녘(?)에 농부는 보이지 않고 사월 햇살이 눈부시고 부는 바람 또한 조심스러울 뿐이다.
잠정적으로 정한 오늘의 목적지 송악에 도착했다.
저 언덕너머 내 머릿속에 인화된 아름다운 산책로가 있다.
내가 화가라면 그대로 그려낼 수 있을 만큼 깊이 각인된 바닷가 그 길은 그냥 지나치기로 하고 아직 시간이 이른지라 가는
데 까지 가다 숙소를 잡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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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다녀가기 훨씬 오래전에 하멜이 다녀갔다는 삼방산
내려다보는 풍경이나 올려다보는 풍경이나 모두가 아름답다.
삼방산에서 잠시 내리막을 만끽하다가 파란색 길을 잃었다.
길을 찾아 해안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급 내리막이다.
내 판단이 잘못되었다면 다시 올라올 적 힘 좀 들겠다는 불안한 예감을 현실이 되었다.
한참을 내려가 서귀포 쪽으로 방향잡고 가는데 생각지도 않은 발전소 정문이 나왔다.
수위아저씨와 통통한 젊은 여자가 둘이 한가로이 한담을 나누고 있어 길을 물으니 왔던 길 되돌아가라는 것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다시금 길을 따라 내려오다 첫날의 무리한 욕심이 둘째 날의 고통으로 이어질것이라는 아주 바람직하고 현명
한 생각에 자전거를 세우고 숙소를 검색하여 아주 전망 좋은 숙소를 잡는데 성공했다.
인근 편의점에서 소주 한 병과 안주 삼을 요량으로 육포 하나 그리고 생수 한 병을 사고 숙소로 돌아왔다.
복기하듯 오던 길 되돌아보며 밀려오는 피로를 마중하듯 잔을 비우다 반병 쯤 남기고 잠들었다.
제주에서의 첫번째 여정은 이렇게 끝났다.
주행거리 8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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