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나와서 부르는 노래

자전거로 제주 한 바퀴(최종)

조강옹 2021. 5. 10.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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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함덕쪽으로 가는 길은 조용하고 아름다웠다.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바람은 약하지만 뒤에서 불었다.
누구는 삼대가 덕을 쌓은 모양이라 하고 누구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보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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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낯익은 언덕길
저 낯익은 풍경
마치 고향에 온 듯 반가웠다.
일전 제주에의 한 달을 내내 이 부근에서 머물렀던 터라 자주 찾던 곳

이른 아침임에도 새벽잠 없는 엄마와 아이가 텐트밖에 나와있었다.
남은 거리 대략 25km다.

이쯤이면 기어선들 못 가랴!
역풍인들 못 가랴!
김녕을 출발할 때부터 아킬레스컨의 통증이 남아있어 걱정했는데 몸마저 건방이 들었던지 각 부위에서 올라오는 통증은 견딜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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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돌리거나 길이 방향이 바뀌어 눈에 들어오는 아침 풍경은 이내 자전거를 멈춰 세웠다.
시간이 넉넉했으므로 천천히 즐기듯 폐달 밟아 가면서 간혹 마주 오는 부지런한 사람들과 큰소리로 인사하면서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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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길은 작은 항 좁은 골목길의 마을 안까지 나 있었다.
아름다운 화장실 표지를 보고 잠시 멈췄다.
볼일 끝내고 자전거로 향하는데 앞에 펼쳐진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종착지는 다가오는데 한 석 달 열흘 아니 석삼년 제주 구석구석 누비며 걸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욕심마저 들게 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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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위로 나는 비행기를 비로소 생각났다.
저녁 비행기를 취소하고 오전 비행기를 예약했다.
대여점에 도착해서 자전거를 반납했다.
엊그제 내가 왔던 장소와 시간이 묘하게 일치했다.
그리고 내가 다녀온 길을 다녀가고자 하는 손님들로 다소 북적였다.

누가 마중 나온 사람도 없었고 수고했다며 박수치는 사람도 없었다.
시간이 넉넉했으므로 공항까지 걷기로 하고 대여점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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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걷는 다는 것이 이리 편하고 걷는다는 것이 이리 행복할 수가!
이제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야한다.

역시나 먹고 사는 문제로 갈등과 어려움이 있는 곳
편한 다리로 복잡하게 살 것이냐
불편한 엉덩이 통증과 함께 신세계에 머물러 있을 것이냐.

이른 새벽시간
물안개 피는 미호천 둑방을 카메라 매고 오가면서 느꼈던 아침의 그 고요
하낳두 건드리지 않고 나는 듯 날아가는 새를 보고 비로소 깨달았다.

새롭게 펼쳐지는 저 새벽 풍경을 보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기위해
새는 날아야하고 날기 위해서는 식욕을 절제하며 일정 체중을 유지해야한다.
바람이 불거나 그렇지 않거나 날기 위해서 하는 날갯짓에
지금껏 알지 못했던 날갯죽지에 전해질 묵직한 통증을 감내해야한다는 것을.

주행거리 : 35km 누적거리: 230km

2021년 5월 1일 새벽

15층 아파트먼트에서 조강.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난 떼어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서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혼자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뜬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움이 없어질 때까지…….

성산포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 수 없지만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뚫어진 그 사람의 허구에도
천연스럽게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절망을 만들고 바다는 그 절망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절망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절망을 듣는다.

성산포에는 한 사람도
죽는 일을 못 보겠다.

온종일
바다를 바라보던 그 자세만이 아랫목에 눕고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더 태어나는 일을 못 보겠다.

있는 것으로 족한 존재
모두 바다만을 보고 있는 고립

바다는
마을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나절을 정신없이 놀았다

아이들이 손을 놓고 돌아간 뒤
바다는 멍하니 마을을 보고 있었다.

마을엔 빨래가 마르고
빈 집에는 하품이 잦았다

밀감나무엔 게으른 윤기가 흐르고
저기 여인과 함께 나타난 버스엔 덜컹덜컹 세월이 흘렀다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죽어서 실컷 먹으라고 보리밭에 묻었다.

살아서 술을 좋아하던 사람
죽어서 바다에 취하라고 섬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그리웠던 사람
죽어서 찾아가라고 짚신 두 짝 놓아주었다

삼백 육십오일 두고두고 보아도
성산포 하나 다 보지 못하는 눈!

육십 평생 두고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또 기다리는 사람!

또 기다리는 사람!..........

시: 이생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