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호천에서 부르는 노래

미호천의 가을 - 논으로 가는 길

조강옹 2022. 11. 2. 13:12

물경 일만 오천년 전이라 했다.

구석기인들이 강변에 무리지어 살면서 벼농사를 지었다한다.

그들이 추수하다 흘린 볍씨 몇 톨이 학자들에 의해 출토되어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내 놓은 결과이다.

그 "벼농사"는 이후 흐르는 강물처럼 끊이지 않고 이어져 오늘에 이르렀고  나도 바통 이어받은 주자처럼 강변 따라 

자전거 타고 오가면서 농사를 이어갔다. 


공룡 같은 트랙터가 "로터리"라 부르는 부수기계 뒤에 붙여 갈아엎은 흙을 휘젓고 간다.

사나흘 기다려 물꼬를 열어 물을 뺀다.

5월 하순경의 일이다.


미호천의 이른 아침은 적막고요다.

새들도 조심스레 날개짓하며 소리없이 머리 위를 날고 자전거 폐달을 밟아가노라면 노면에서 올라오는 작은 소음조차 조심스럽다.

아직은 잠에서 깨지 않은 생명이 있는 것들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고 이 담에 우리 생이 마감한 이후 49일 거쳐 다다른

다는 저승으로 가는 길이 이런 길은 아닐까 생각이 미치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말끔히 심겨진 모를 바라보노라면 발목이 시려온다.

아침 공기가 아직은 차기 때문이다.


어릴 적 일찌감치 동네 시집와서 오랜 세월 농사일로 세월따라 예까지 오셨을 할머니 한 분 지팡이 짚고 가는 뒷모습이

범상치 않다.  호미 한 자루 벗 삼아 곤한 노동 감내해온 보답으로 얻은 이 이른 아침의 여유가 충분한 보상이 될까만은 

예전 같으면 이 이른 시간조차 고쿠락 앞에 앉아 쇠죽을 끓이거나 솥뚜껑 열고 여물을 휘젓고 있을 시간이다.

칠월의 강변은 늘 조용하고 녹음은 한층 짙어진다.

약자들은 강자를 피해 숨을 수 있을 만큼 또는 공룡이 서식한다해도 충분히 먹이를 감당 할 만큼 너그럽고 풍요롭다.


허리 꺾어 하는 일 치고 쉬운 일이 어디 있으랴!

쌀 한 톨이라도 더 가꾸어 거두겠다는 욕심이 아니다.

그냥 논이 거기 있고 벼가 거기서 자라는데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농심의 발로 일뿐이다.


한두 번쯤 이런 시련도 찾아온다.

어쩌랴!

시간에 기대어 참고 기다려야 할뿐 속수무책이다.

 


살아있는 것들이 계속 살아가는데 가끔씩 이런 날도 있다.

그래서 다시금 추스르고 일어나 우리 사는 세상 알흠답고 살만하다 심기일전하는 것 아니겠는가? 


시월은 축복의 계절이다.

시련을 견딘 만큼 결실로 이어지고 땀 흘린 만큼 수확으로 돌아온다. 에누리 없다.



공룡 같은 콤바인이 들어와 벼를 베고 알곡만 골라 부대에 실려 미곡처리장으로 간다.
 
그리고 텅 빈 들판 공룡 알만 저렇게 남아있다.

소에게는 통조림이고 김밥이고 도시락이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차 있고 논으로 가는 길은 억새가 만발이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낙엽은 지고 머잖아 눈 내리는 추운 겨울이 올것이다.

한 알의 밀알이 썪어 땅에 묻힘으로 해서 되로 주고 짝으로 돌려 받는 자연의 선물.

흐르는 강물처럼 세월도 따라 흐르고 어느 집 토광에서 죽은 듯 살아 숨쉬는 씻나락 처럼

내년의 풍요를 꿈꾸며 그 강변에서 씨뿌리고 가꾸고 거두 던 또 다른 이들이 벌써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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