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나 순천에 방랑이노 사까이요.
그리운 부모형제 다 잊고 방랑생활하다보니 쐬푼이 그리워라 이 내신세!"
자그마치 사흘 연휴
어디로든 가야하지 않겄나?
그만큼 요즘의 일상이 스트레스로 절어있기도 하거니와
대략 스무살 시절
강원도 탄광촌 어느 선술집에서 옆자리 취객이 부르던 각설이 타령조의 이 노랫말이 운명처럼 생각이 났다.
여수나 순천이라!
남도 육백릿길이다.
멀다고 마다할 일이 아닌것이
날이 갈수록
탁상시계 초침 넘어가듯 하는 소리 처럼
계단을 오를때면 오른쪽 무르팍에 어김없이 "째깍" 하고 선명하게 전해져 오는 통증
젊어서 일하고 늙어서 놀자는 말도
이제는 어중간하긴 하지만 늙긴 늙었는고로 자격있다.
그렇게 마음먹고 맨처음 찾아간 곳이 순천하고도 송광사다.
어느 이쁘장하고 영특해 보이는 처자 하나가 일찌감치 가을 아침 햇살을 등에지고
저렇게 1200년전에 지은 절이란 안내문구를 읽고있었다.
꽃무릇 한 송이 불 밝히듯 환하게 미소짓고 서있다.
연고 하나 없는 사고무친의 남도에 이만한 환대가 어디있겠나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마음이 환하게 밝아져 온다.
이른 시간 탓일까?
각설이 구걸하듯 고개 삐끔히 내밀고 들여다 본 일주문 안의 경내는 의외로 고즈녘하다.
계곡물도 숨 죽이고 점잖은 척 흘려내려오고
대게의 명산대찰이 그러하듯 주변의 산과 나무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역사가 1200년이지 기실 모진 풍상에 불타고 부서지고 주저앉기를 반복하여
중창에 재창을 거듭했음에도 뒷산과 나무와 풀들과 저리 조화롭게 서있다.
일찌감치 속세를 등지고 구도의 길을 나선 스님들의 예불 드리러 가는 행렬
바라옵건대 얼른 득도하시어 우리 중생을 다 건지어 주소서!
필시 고장난 포크레인 하나 없던 시절이었을게다.
삽 한 자루, 곡괭이 하나로 이 계곡에 어찌 저런 넓은 터를 닦았으며
돌 쪼아 주춧돌 삼고 나무깎아 기둥세워가며 어느 천년에 저리 기왓장 얹어 이 웅장한 광경을 연출해냈을까?
파란 기와집에서 머물고 있거나 여의도 주변에서 얼쩡거리며 밥 빌어 먹는 사람들
또는 미리 저지른 죄가 있어 나라에서 따로 마련해준 곳에 거처하면서 콩밥 자셔야 함에도 불구하고
나랏님께옵서 따로 할일이 있다면서 꺼내주는것 보아오면서 한 숨 쉬다가도
어디가든 뒤를 걱정하는 사람들을 위해 지어놓은 저 해우소 만큼은 가히 선진국 문턱을 일찌감치
넘어선것 아닌가!
이번 여행 내내 급할적 마다 곳곳에 마련되어 있어 깔끔하게 뒤처리 하고 나오면서 흐믓한 마음으로 자부심 가져본 것중의 하나이다.
걱정을 덜기 위해 들어가는 모습과 걱정을 내려놓고 다시 걱정있는 세상으로 나서는 모습
대부분 쓸데없는것임에 도 불구하고 우린 늘 만들어서라도 짊어지고 사는것 또한 걱정 아닌가?
이제는 내려놓았는 고로 걸음걸이가 가쁜하다.
생전에 무소유를 설하시던 법정 스님의 자취가 남아있는 송광사
빛을 찾아 모여드는 불나비 처럼 법을 구하려 모여드는 중생들을 세워놓고 입구에선 여전히 문화재 관람료를 내라하고 자랑인양 카드나 현금 영수증은 받지도 발부하지도 않겠다다는 내용의 안내문까지 버젓히 걸어놓고 있었다.
그래도 뭔가는 내려놓고 간다는 생각으로 발걸음 가볍게 내려온다.
또 어디로 갈거나?
정해놓고 온것이 없으니 갈곳 또한 무진장이다.
발길 닿는대로 바퀴 굴러가는대로 물 흐르듯이 떠나면 되는 것을 그 사이 또 걱정하나 만든다.
조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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