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네 살 된 해 가을부터
길가의 은행나무 잎이 더욱 노랗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해 가을부터 가지에 붙어있는 나뭇잎보다
밑동에 떨구어진 나뭇잎이 더욱 노랗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쉰 네 살 된 해 가을부터 저 떨어지는 은행잎이
스스로 때를 가늠하여 밑으로 내려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밤새 비라도 내린 날이면 밑동에 수북이 쌓인 나뭇잎이
조용히 잠들어있음을 안 이후부터 발걸음도 조심스러워 지기 시작했다.
쉰 네 살 된 해 가을부터 비로소 나도 때를 가늠하기 시작했다.
도랑을 건너뛰는 아이처럼 이제나 저제나 재기만을 되풀이하다가
가지에 머물러 있거나 밑으로 내려가거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도
스스로 밑동에 떨어진 나뭇잎을 보고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쉰 네 살 된 해 가을부터
스스로 낮은 곳으로 내려앉아 무게 실렸던 가지 쳐다보며
노랗게 물들어가는 은행잎 되어 그의 밑동에서 잠들고 싶은
꿈 하나 내안에서 자라나기 시작했다.
조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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