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씀은 대충 맞는 말씀인 것이 봄날 날 잡아서 다섯 남매 한 자리에 모여 세상사는 얘기 편하게 하자하고 처가 형제들이 받아놓은 날짜와 당고모 한 분이 딸을 여읜다며 와서 점심이나 먹고가라 기별 온 날짜가 정확히 일치한데다가 장소마저 쌀쌀한 날씨를 감안하였던지 턱하니 남쪽으로 오라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더라!
게다가 아주 오래전 오늘날의 이 거사를 위해서 부러하진 않았을지라도 누군가가 가까운 오송역을 거쳐 가는 고속선 까지 깔아놓고 적당한 간격으로 대한민국을 질주하는 KTX까지 대놓고 어서 타라하니 반만 년전 단군왕검께옵서 태백산 신단수 아래 내거셨던 홍익인간 그 건국이념이 비로소 실현되었다 아니할 수 있겠는가?
채 두 시간이 되지 않아 도착한 부산은 초여름 날씨였다.
좋은 날 좋은 사람들끼리 변치말자 약속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그 약속 빌미삼아 초대받아 점심 자시러 온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지 적잖은 빌딩 층층이 송곳 꽂을 자리 하나 없을 정도로 혼잡한데 용케도 제대로 찾아가 오랜만에 보는 얼굴 맞잡은 손에 힘들 들어가는 정도를 달리하여 악수하고 접시에 담긴 하였으되 앉을 자리 찾기 만만찮은 번잡함속에 용케 두 내외 마주앉아 별난 음식 먹고 나서 먼저 간다 인사하니 그래도 종갓집 손자고 조카고 형님이고 하니 하던 식사 멈추고 좌중이 모두 일어서서 나름 아쉬움을 표하며 문밖까지 전송함에 절로 흐믓하더라!
기다리고 있던 처제내외 안내받아 송정으로 가는 길
우릴 기다리던 벚꽃 이미 다 지고 길가 가로수며 먼산 나무들 모두 새잎으로 단장이 한창이다.
오랜만에 찾은 동해바다 바람 모질게 불어 해수욕장 모래까지 날려가며 맞이하는 품새가 꼬리치며 달려드는 강아지 새로 산 양복바지 흙 묻히는 형세라! 그만 저만치 물렀거라!
물렀거라한다고 물렀거지 아니한 것이 강아지나 바닷바람이나 매 한가지라! 피신하듯 정해놓은 숙소로 들어가 일찌감치 상 펴놓고 먹고 마시고 떠들며 꿈같은 하룻밤 지내고서 쓰린 속 달래며 국밥 한 그릇씩 비운 다음 가까운 절이라도 다녀가자! 각자 몰고 온 차 나누어 타고 나섰는데 십리를 아니가서 문득 비보 하나 날아온다.
뒤차 타고 따라오던 안해가 코피가 터져 멈추질 않아 인근 병원에 잠시 들러 치료받고 가야한다하여 나머지 일행은 먼저가라하고 인정 많은 처제 차 한 대 남아 병원으로 향했다.
씩씩하고 용감하게 생기신 여의사 약 묻힌 거즈 무지막지 콧구멍으로 쑤셔넣고 하는 말이 십중팔구 지혈되나 그러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청주 올라가더들랑 반드시 큰병원 찾아 진찰받고 처방받으시오!
들뜬 분위기 깨기가 이보다 더 쉬울 수 있겠나?
절에 갔어도 절구경이 아니 되고 다시 찾은 바닷가 장어 굽고 회 떠서 맥줏잔에 소주 붓고 맥주로 간 맞춰 마셔도 맹숭맹숭 마음에 없는 소리 지껄이다 정해놓은 시간 맞춰 열차타고 올라왔다.
다 늦은 저녁에 집에 도착하니 막아놓은 콧구멍이 답답하기 이를데 없다하여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로 찾아가 자조치종 얘기하고 거즈를 제거하니 또다시 피는 솟는지라! 모처로 전화하여 불려나온 전문의가 특별나게 진찰하고 검사하여 다시 틀어막고 링거 꽂고 누웠다.
언제 적이던가?
경주근처 감포 바닷가 휴가차 놀러가 야밤중에 탈났다 자는 사람 모두 깨워 경주 병원 찾아 응급실에 날 새고 청주 올라와 다른 병원에서 사날 입원했던 것도 아주 오랜 얘기가 아니요
어제같이 기억이 새로운 것이 오늘같이 처가형제들과 모여 광안대교에서 오륙도까지 둘레길 걷기로 작정하고 삽상한 바람 맞아가며 날아갈 듯한 기분으로 채 십분도 못 걷고 돌부리 걸려 넘어져 무르팍 깨서 병원 찾아 난리치던 것도 재작년 이맘때였다.
잊어버릴 만하면 한 번씩 주위를 놀래키고 응급실 침대에 누워 미간에 주름잡아가며 폼 잡는 안해.
아주 오래된 약속을 저버리기엔 같이 살아 온 날이 너무 많고 두 아해 또한 아비 편에 선다는 보장이 없는데다가 더더욱 걸리는 것은 안해 이름으로 통장에 들어가 있는 동산이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처지가 이럴진대 똑 똑 떨어지는 것이 어디 안해가 누워있는 침대맡의 링거 약물 뿐이겠는가?!
조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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