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 보면서 부르는 노래

첫월급

조강옹 2019. 12. 26. 14:09

아침에 퇴근하니 아내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엉거주춤 앉아있었다.

배가 아프다는 것이다.

택시를 불러 도착한 산부인과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어느 배부른 새댁도 표정은 아내와 별반 다름이 없었다.

 

그렇게 얼만가 지나서 먼저 와있던 새댁이 들어간 문으로 아내는 들어갔고 한참이나 지나서 간호사가 문을 열더니 배냇저고리를 가져오라한다.

 

언뜻 알아듣지를 못하니까 요 앞 시장 옷파는 가게에서 애가 입을 옷을 달라하면 줄 것이니 냉큼 사 오라는 것이었다.

 

시장으로 달려가 여기 저기 물어 가까스로 배냇저고리 사들고 왔을 때 아내는 이층 병실로 옮겨져있었다.

옆에는 아주 작고 생경한 발그라니 붉은 얼굴의 아이가 뉘어져있었다.

84819일 점심때쯤 되었었다.

 

아내도 엄마로서는 참 어설펐고 나 또한 아버지가 되기 위한 준비가 전혀 없었다. 야근을 하고 온 터라 피곤하기도 했고 이대로 마냥 있어야 되는지 어찌해야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래층에 내려가 간호사한테 집에 가도 되느냐고 했더니 조심해서 데리고 가라했다.

 

택시를 불러 안동 처가로 향했다.

한 여름이라 창문을 여니 기사아저씨가 아이한테 좋지 않을터이니 갑갑하더라도 문을 닫고 가는 것이 좋겠다하여 다시 닫았다.

한 시간 여 달려 처가에 당도하니 안동 어머니께서 황급히 달려와 맞았다.

 

병원에서 하룻밤이나 재우고서 올 일이지…….”

 

한바탕 난리끝에 아궁이 군불을 지피시면서 철없는 사위에 대한 원망 섞인 한 마디 내 뱉으시었다.

 

그때까지 젊은 사위는 왜 하룻밤 재우고 와야되는 것인지 그리고 무더운 한 여름인데 방에다 군불을 지펴야 하는지를 알지 못했다.

 

우리 큰애는 그렇게 세상에 나왔고 돌이 채 되지 않아 아버지 고향으로 와서 자랐다.

마당 끝이 미호평야의 시작인 전형적인 농촌에서 윗동네 교회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에도 다니고 마당에서 흙장난도 하고 집에서 기르는 개를 발로 걷어차기도 하면서 인근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마쳤다.

 

고등학교가 시내에 있는 고로 통학을 하면서 국어선생님의 꿈을 키워나갔다.

사범대 국어교육과에 진학하고서 지겹기도 할 것 같은데 아들은 언제나 꾸준하고 열심히 공부했다.

 

졸업하던 해 한 번, 그리고 졸업하고서 두어 번 시도한 좁은 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낙담했다.

 

적잖게 고민했을 터이다.

어느 날 경찰시험 공부를 한다고 했다.

그리고는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 까지 도서관에서 지냈다.

경험삼아 한번 그리고 또 한 번 경험 삼아야할것이라는 두번째 시험을 통과했다. 작은 체구임에도 체력시험까지 거뜬히 넘어섰다.

온종일 책과 씨름하고 늦은밤 혼자 헬스장에서 땀 흘릴 만큼 아이의 준비는 철저했던것이다.

 

8개월간의 교육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용인 어디쯤 있는 기동대로 발령을 받아 전세방 얻어주고 내려온 것이 지난달 23일이었다.

 

지난 주말 아들이 친구들 모임이 있다면서 집에 다니러왔다.

휴일 하루 집에서 보내고 저녁을 먹고 올라간다해서 인근 음식점에서 외식을 하기로 했다.

 

음식이 나오기전 아들은 제 엄마한테 봉투를 내밀었다.

동료들 중에는 저보다 더 어려운 친구들도 있어 방세도 내고 해야하는데 저는 부모님 잘 만나서 그런 걱정이 없어 감사드린다했다.

선물을 무엇을 살까 고민도 많이 했는데 혹여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 저어되어 그냥 봉투를 드리기로 했단다.

 

아내가 받아 열어 본 봉투에는 명세서에 적힌 금액 천원단위까지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엉겹결에 받아든 아내는 우선 일금 십만 원을 덜어서 어머니께 드린다.

 

좀 더 쓰시지, 손주한테 처음 받으시는 용돈인데…….”

 

아내는 망설이지 않고 처음 드렸던 만큼 한 번 더 얹어 드린다.

 

아들은 다시금 용인으로 떠나갔고 어머니는 일찌감치 자리에 드셨다.

 

다소 늦은 밤

늘 다니는 길로 야간 산책을 나섰다.

아이가 처음 태어나던 이야기부터 좋은 추억만 하나 둘 꺼내 서로 번갈아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왔다.

저녁에 반주로 먹은 맥주와 소주와 맥주와소주를섞은 술이 참 맛있었는데 잠자리에 오르는 취기 또한 달콤하기 까지 했다.

 

이튿날 아침

우리 내외는 아들에게서 받은 돈의 딱 절반을 다시금 돌려주기로 했다.

출근길 열차 안에서 스마트폰으로 아들계좌로 송금하고 카톡을 보냈다.

 

네 생애 첫월급. 절반만으로도 부모는 감당하기 벅찰 만큼 행복하단다. 고맙고 자랑스럽고 사랑한다.”

 

 

카톡.

 

그냥 다 드렸으면 좋겠는데……. 그럼 소급기여금 한 번에 내는데 보태서 쓸게요

 

 

조강.

 

기여금 : 퇴직금 적립을 위해 차인하는 돈으로 공무원의 경우 반은 본인 급여에서 차인하고 반은 정부에서 부담한다.

소급기여금 : 군 복무기간을 호봉으로 인정하주는데  그 기간만큼 미납된 기여금은 소급해서 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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