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나와서 부르는 노래

강원기행- 민둥산 가는 길

조강옹 2022. 10. 27. 05:04

강원도가 나를 사랑하는지는 몰라도 나는 강원도를 사랑한다.

 

스무 살 젊은 시절, 적잖은 기간을 지금은 태백시로 명칭이 바뀐 철암, 황지, 문곡 등지에서 지낸 적이 있고

 

그 시절, 가끔씩 고향을 다녀오는 길에 창밖으로 보이는 높은 산과 계곡

 

그리고 척박한 땅을 일궈낸 분지와 옆 등성이 고랑 낸 밭을 쳐다보는 것을 나는 좋아했다.

 

이른 아침

 

충북선에서 갈아 타 태백선으로 이곳까지 오면서 몇 컷 담은 그림은 "산천의구"란 말 그대로 변치 않은

 

나의 강원도에 대한 사랑이기에 반갑고 정겹고 애틋하기까지 했다.

 

하여, 민둥산 역에 내렸을 때 철길에 조금씩 흩뿌리는 가랑비마저 나를 반기는 것이라 여겼다.

 

 

비는 옷 젖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가늘고 뜸해서 노란 은행잎을 더 노랗게 그렇잖아도 산뜻한

 

거리는 더 산뜻하게 바꾸어 놓았다.

 

언제부턴가 이름까지 민둥산역으로 바꾸어 놓을 정도로 유명세를 탄 이후

 

눈 감으면 그 산길이 끊기지 않고 돌아가는 필름처럼 연상될 정도로 기억되는데다가

 

청주에서도 기차를 갈아타면 당일로 다녀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안 이후로 벼 베고 나서 한 번씩 찾는 연례행사가 되다시피했다.

 

그런 탓으로 올 때는 새색시 첫 친정나들이 처럼 설레고 돌아가는 길엔 자꾸만 뒤돌아보며 후일을 기약하곤 한다.

 

한참을 걸어 다다른 입구는 사찰의 일주문처럼, 군 부대의 위병소 처럼 저렇게 그 옛날 화전민들이 일구어 놓았다는

 

억새꽃 만발한 하늘정원으로 가는 길의 시작이다.

 

 

 

평일임에도 적잖은 사람들이 열차에서 내렸다.

 

대부분 민둥산을 찾았다는 징표 삼아 등산복에 배낭을 메었고 그 배낭엔 약속한 듯 산지팽이 두 개씩 꽂혀있었다.

 

먼 길 어렵게 와서 앞서가는 사람 뒤꿈치 구경하는 것을 경계해서 일부러 천천히 걸은 탓에 들리는 소리라곤

 

연신 좌우를 훑어보며 질러대는 아내의 탄성 소리뿐이다.

 

주위의 모든 나무며 그 나무에 달린 잎은 우산처럼 가랑비를 가려주어 비 걱정을 덜어주었을뿐 아니라

 

마치 금방 샤워를 마치고 욕실에서 나온 여인처럼 싱그럽고 요염하기까지 했다.

 

한편으로는 생각보다 험하고 길어진 것 같아 숨도 차고 종아리도 저려온다.

 

어지간히 왔다는 이정표인양 제자리 차지하고 있는 휴게소도 반가웠고 사천왕처럼 버티고 있는 길 가운데 나무도 반가웠다.

 

 

모든 억새들이 햇살이고 바람과 마주하여 하얗게 흩날리듯 장관을 연출할 것을 기대하고 오른 정상

 

솜사탕처럼 하얗게 부서지다 시피 눈부셔야할 억새의 솜털도 비바람을 피해 움츠려 가녀린 날개를 접었고

 

우리 또한 더 이상 비를 가려줄 나무가 없었기에 구름이 일다 스러지고 가랑비는 희롱하듯 오락가락하여

 

급기야 옷 젖는 걱정을 하게끔 만들었다.

 

손이 시려워왔고 배도 고파왔으며 젊은이에게 부탁하여 정상 사진을 찍고 나서 받아든 카메라 렌즈에도 빗방울이

 

맺혀있었다.

 

배낭속의 점심 중에 따뜻한 것이라곤 보온병에 담긴 물 뿐이었기에 휴게소에서 컵라면으로 몸을 데우기로 했다.

 

가격이 생각보다 착했고 시장기 반찬을 더해 아내의 정성어린 점심은 맛이 있었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올 적 보지 못했던 풍경이 덤처럼 눈에 띈다.

 

비 걱정에 한갓지게 둘러보지 못하고 서둘러 내려온 탓에 남은 한 시간여 시간을 역사 안에서 쉬기로 했다.

 

열차시간이 다가옴에 따라 하나 둘 몰려드는 사람들 신발은 하나같이 흙투성이였고 간혹 엉덩방아 인증하듯 팔꿈치와 엉덩이에

 

흙도장 찍은 사람들도 있다.

 

이 모두를 태우러 열차는 정시에 도착했고 모두들 빨려들듯 열차에 올랐다.

 

구름이 하늘을 덮은 고로 창밖엔 이른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카메라에 담고 보니 이전에 담았던 풍경이고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랍고 반가웠다.

 

아주 오래적

 

화전 일구어 가꾼 감자, 옥수수 등에 지고 혹은 머리에 이고 오르내렸을 화전민들

 

그들의 지난한 삶과 몇 정거장 더 가면 나왔을 검정 일색의 탄광촌

 

유배지에 홀로 남겨진 것 같은 서글픔에 담배 연기 깊게 들이마시고 뿜어내며 바라보던

 

앞산도 저렇게 단풍들었었고 그때 하늘도 오늘처럼 회색빛이었다.

 

오래된 기억이고 잊혀진 줄 알았는데 그때 그 산이, 그때 그 하늘이 아직도 여기, 강원도에 온전히 그대로 남아있었다.

 

사람만 스무 살에서 육십 다섯으로 하릴없이 늙었을 뿐이다.

 

그래서 강원기행은 비에 젖은 잎사귀처럼 산뜻하게 잊혀진 기억이 되살아나는 과거로의 시간여행이기도하다.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고 적당히 서글픈, 전장에서 살아남은 늙은 병사의 아물지 않은 상처 - 지워지지 않은 흉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