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나와서 부르는 노래

회룡포에서 부치는 편지

조강옹 2024. 10. 20. 19:36



모르며 살기로 했다.
시린 눈빛 하나로
흘러만 가는 가을 강처럼
사랑은 무엇이며
삶은
왜 사는 건지
물어서 얻은 해답이
무슨 쓸모 있었던가

모를 줄도 알며 사는
어리석음이여
기막힌 평안함이여
가을 하늘빛 같은
시린 눈빛 하나로
무작정 무작정 살기로 했다.

 - 유안진의 작정 전문 -


일에서 손 뗀 지 다섯 해
언제부턴가 무작정 살기로 했으면서도 시인의 노래처럼 기막힌 평안함은 없는 듯하였습니다.

작년 내내 허리 통증으로 고생하다 연말쯤 되어서야 뒤늦은 판단과 결정끝에 허리뼈 어디쯤 드릴로 구멍을 뚫고 
튀어나온 디스크를 태워 없애고 나서 소걸음으로 십 리 길 가듯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나아졌습니다.

한 해를 그렇게 보내고 맞이한 올여름은 지독시리 더웠기에
도리없이  병든 개처럼 혓바닥 길게 내밀고 헐떡거리며 보냈습니다.
그래 무작정 살기로 했던 듯싶습니다.



"어버이 살아실제 섬기기를 다 하여라!"
이미 돌아가신 양친 부모  제사 모시러 안동 가는 길
중간쯤 쉬어가는 휴게소에서 다시금 자동차 시동을 걸고 핸들 돌리면 눈에 들어오는 이 그림이 참 편해서 좋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이정표에 자꾸만 눈에 들어오는 회룡포로 향했습니다.
맞은편에서 차 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내성천 옆으로 난 좁고 기다란 길을 한참 가다가 오른쪽으로 가파르고 굽이진 길을 따라가다 보면 곡한 오르막 좁은 주차장에 가까스로 차를 댔습니다.

가파른 길 오르면서
목전의 장안사는 내려오는 길에 돌아보리라 작정하고 올라가다 얼추 다 온 듯한 곳에 이르면 
산에 뜬금없이 용왕각이 나옵니다. 

겪고 보니 아픈 허리로는 끔찍한 저 가부좌
돌탑 머리에 이고 앉아계신 돌부처 또한 그리 편해 보이지 않습니다. 



가파르게 삼백여 미터
길 양편에 목판에 써서 세워놓은  시 
한 편 한편, 읽어가며 오르다 보면 요렇게 꿈꾸듯 아름다운 그림이 나옵니다.

물길이 감돌아 나가는 내 안에 이렇게 아름다운 땅이 있고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신선도 부럽지 않겠다 싶은 생각에
전망대 좌우를 오가며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까치발 뜨고 담장 안 들여다보듯 들여 다 보아도 생각은 바뀌지 않습니다.
오가는 이 없이 적막고요 한 동네
저기 사는 사람들은 무작정 살지는 않으리라 생각하면서 올라올 적 내려갈 때 들르기로 한 장안사로 향합니다. 


돌이켜보니 사십 년을 같이 살아왔습니다.
땀도 많이 흘렸고 그만큼 남몰래 흘린 눈물도 적지 않았을 삶
늘 저렇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그 대상은 언제고 자신을 뒷전으로 한 채 
남편과 아이들이었고

이제는 이 땅에 계시지 않은 부모님까지
계신 그곳에서 평안하시라는, 
아내의 이타적인 삶이 안쓰럽고 애틋하여

이제부터라도 무작정 살진 않겠노라 다짐하는 2024년 10월 7일
아직 가야 할 찻길로 한 시간여, 안동 가는 길에 잠시 들른 
여기는 회룡포 장안사 경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