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에 펭귄 모여 살듯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이 서울과 경기도 일원에 빼곡히 모여 산다.
한강수 바다에서 서로 만날 적
맨 먼저 나와서 맞이하는 곳 -강화도
석모도는 어미닭 뒤에 숨은 병아리처럼 강화도 뒷편에 꽁꽁 숨어있는 형상이다.
청주에서 아침 먹고 한나절 달려 끼니 때우고자 들렀던 곳 -외포항이라 했다.
구색 맞춰 갈매기가 날고 항에 배 몇 척 졸고있으니 참 멀리도 왔구나하였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었던가?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매표소 창구에 손가락 두개 펴 넣으면서
"공짜로 절 구경 좀 댕길라구 설 때마다 떡국 두 그릇씩 부지런히 먹어 됐구나 싶었는데
이렇게 단박에 칠십으로 올려놓으면 헛심켜서 어떡하나!"
입장권과 함께 안에서 키득하는 웃음이 새어나왔다.
"이전에는 절이 도심 한 가운데 있었는데 조선시대 억불숭유정책에 의해 산으로 쫓겨 들어갔다."
국사시간의 선생님 말씀은 곧이가 들리지 않는다.
건물 규모나 동수에 비해 터가 넉넉하지 않은데 일주문 지나 가쁜 오르막 오르면서 우회전해 올라가는 길이
얼핏 보아도 저 연세 높으신 은행나무를 중심으로 이렇게 묘하게 조화를 이뤄 자리해 있는데다가
저렇게 대웅전 앞마당이 학교 운동장보다 넓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착시 현상일까?
겨울에 눈 쓸어내기도 적잖이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과 보름달 환히 비치는 밤
뒷짐 지고 포행하다 보면 누구나 쉽게 도를 구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미처 숨도 고르지 못했는데다가 이런 저런 생각으로 찬찬히 둘러보고 올라가자 했더니
"먼저 올라갔다 내려와서 보면 되지요."
돌이켜보면 서른 아홉 해를 두고 아내는 언제고 내 제안에 역제안이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서 가는 길은 험난한 계단길이다.
원한다고 모두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들 마음속엔 늘 원하는 바가 있다.
그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기까지는 최소한의 성의를 보여야한다.
이를테면 힘들여 높은 곳에 오르거나 백일기도처럼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하는 것이 그 예다.
여기서는 높은 곳에 오르는 수고를 감수해야한다.
걸음을 옮길 적 마다 원하는 바를 되뇌다 보면 그것이 기도가 되는 것 아니겠는가?
딱히 원하는 바가 없기에 계단수 세며 걸어서 오른다.
오래전
석공의 돌 다듬는 소리가 다듬잇 소리처럼 울려 퍼졌을 것이다.
저 아래 동네사는 다소 어색한 관계의 아낙이 틈틈이 참을 내어 다녀갔을 것이다.
스스로 원하는 바를 이루게 해달라는 기도든 또는 생계유지를 위한 강요된 노동이든
혹은 이도저도 아니면 어떠랴!
거기에 애달픈 사연하나 버무려 전설로 이어져 내려올 법 하건만
입동지난지가 한참인데 어깨에 쏟아지는 햇살은 가을의 그것처럼 따사롭다.
거친 숨과 땀 몇 방울로 예까지 올라와 오랜 시일 기도로 새긴 석공의 노력 앞에 꿇어앉아 그 결실을 나누어 달라 간청하는 것
염치없는 기도는 욕심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에 차라리 편히 앉고나 보자는 생각에 어설픈 가부좌 틀고 한참을 앉았다.
뒤돌아보면 올라온 만큼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아름답다.
멀리 보이는 것은 늘 어렴풋이다.
내려다보는 저 풍경이 그러하고 노년 깊숙이 걸어들어가는 인생행로 또한 그러하다.
이젠 어렴풋은 그만하고 명약하게 보일 때도 되었건만.
내려가는 길 쉼터에 앉아있는 - 사람과 사람
특히나 선남과 선녀가 인연에 얽매여 토닥이듯 서로 의지 삼아 함께 살아가는 것
- 결혼은 아름답고 행복한 자승이고 자박이다.
그렇게 서른 아홉 해째 살아 온 노인의 증언이다.
여의주와 더불어 신비감을 자아내는 상상속의 동물인데 가까이 다가가보니 정작 살아있으면 참 무섭고 징그럽기까지하겠다 싶었다.
호랑이와 싸워서 이길것 같지도 않았다.
바람이 연주하는 가장 맑은 소리
붓으로 그려낸 가장 아름다운 색의 조화 속에 혹여나 소리 들릴까 귀가 종긋해진다.
욕심을 덜어내게 해달라던지 덜어내지 못할 바에 차라리 채우게 해달라 청하는 것이 기도라면
채우는 것과 비우는 것이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은 일체유심조이자 반야심경에 반복되는 공즉시색 색즉시공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저들의 기도에 대한 궁금증이 사라진다.
채우면 얼마나 채울것이며 덜어낸다한들 그게 그거 아니겠나?
그냥저냥 속편하게 살면 될일이다하였다.
아직도 대웅전 마당을 서성이거나 일주문 지나쳐 뒤돌아 보며
아주 오랜 세월 거기 머물고 있음에도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고 가지 많이 갈라내던 은행나무와 소나무 바라보며
덩달아 생각 많아지는 바람에 속알머리 훤하게 빠져나간 내 머리에도 머리카락 한올, 두올 생겨나올듯 머리가 가려워오던
석모도 보문사 햇살 따갑던 오후의 기록은 여기까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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