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호천에서 부르는 노래

마흔 세살의 일기- 방아찧던 날

조강옹 2019. 12. 23. 19:21

 

방아찧던 날  2000/10/19

엊그제 사랑부엌에서 왼종일 방아를 찧었다.

큰누나 한 짝, 둘째누나 한 짝, 형네 한 짝, 동생네 한 짝, 엊그제 시집간 미경이 반짝, 도합 네 짝 반을 찧었다.


막내누나는 농촌으로 시집가서 주지 않는다.

아내는 이를 두고 어떤×은 얼어죽고 어떤×은 데어죽는다 한다


출수기의 잦은비와 9월 태풍 때 전체 병력의 1/5 이 지레 겁먹고 자살하였기 때문에 작년보다 40키로 기준으로 열 세 개 줄었다.


쌀로 자그만치 다섯 짝이다.

금전적으로 따져 보려다 이내 포기한다.

따져 본다고 없는 베짝이 늘어날 일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방아 찧구나서 쌀짝을 묶고 있는데 웃동네 간순할머니가 마실오셨다.

울엄니는 일일이 자랑삼아 쭉 설명을 늘어놓으신다.


"엊그제 시집간 생질녀까지 준다구 반 짝을 더 찧었다우.... 우리 에미가 그런 생각까지 다 하구...."

울엄니두 그렇구 아내두 그렇구 참 이해할수 없을 때가 종종있다.

집안에서 웬수처럼 터져라 전쟁하다 가두 밖에 나가거나 누가 오면 금새 선린우호적이다.


가까운 역에가서 죄다 수화물로 부치구 왔다.

네 시반, 동지도 안 지난 하루 해가 유난히 짧다.


나긋한 피로가 몰려온다.

보일러 틀구 자리깔구 눕는다.

아내 퇴근까지 두어시간 남아서 잠깐 눈이라두 붙여야지

............


현관문 열리는 소리에 잠이깼다.

문소리만 가지구두 나는 아내가 왔음을 안다 (워낙 요란하니까)


아내가 출근한 날 이후로 저녁 준비는 대개가 엄니 몫이다.

저녁상을 차려놓구 아이들 시험기간이라서 모처럼 온 식구가 한 자리에 모였다.


오늘 방아찧은 얘기, 간순할머니 왔다 가신거, 독감 예방주사 맞은거, 나 두어시간 잔거.. 엄니는 자상하시게도 아내에게 죄다 말씀하신다.


게다가 아내는 중간 중간 말을 자르고 궁금한 것은 질문도 하구 고개도 끄덕이구...


틔뷔드라마 젊은사장과 늙은 상무간의 대화 장면과 눈꼽만치두 다를 게 없다.


참으로 묘한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중심 이동이다.

아들이 시원찮아 며느리까지 산업전선에 투입한 것이 엄니에게는 치명적인 듯 싶다.


나라구 별 수 있을라구..

식사 끝나구 아내 기분이 좀 안 좋아 보이면 엄니 몰래 설거지 한 것이 어제까지 벌써 세 번째다. 아무래도 오늘도 내가 하는 것이 편할 것 같다.


첨엔 왜 안하던 짓 하냐구 극구 말리더니 강도가 점점 약해지고 급기야 숟가락 놓기게 무섭게 화장실 가더니 "오고루룰룰루 켁" 소리가 부엌에 까지 들린다.


아내는 양치질두 유난스레 한다.


아홉시 뉴스가 시작되자 아내는 여기 저기 전화한다.

쌀 부쳤으니 연락오면 찾아가라구


재주는 곰이 부리구 돈은 언제나 떼놈이 번다.


모레쯤 되면 집에 전화벨이 요란할 것이다.

형수며 제수며 누나들 일일이 고맙다구 전화가 오겠지

다른 사람이 받아두 꼭 아내를 거쳐야 한다.

그들도 우리집의 무게중심이 이미 아내 쪽으로 기울어 졌음을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