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어버릴 만하면 한 번씩 어머니 모시고 다녀오는 곳.
근 사십년 세월에도 빛 하나 바래지 않고 천연색으로 남아있는 유년시절 추억, 그 중 몇 장이 밤나무 많은 공주 어디쯤 산자락 아래 외가가 있던 동네 고스란히 남아있다.
외삼촌 형제분들 다 대처로 나가시고 둘째 외삼촌 내외분만 그 동네 그대로 살고 계시다 서너 해전쯤 해서 외삼촌마저 돌아가셨다.
이듬해 였던가?
콘크리트 포장된 굽은 진입로 따라 늦은 오후 집에 들어섰을 때 마당 한구석 늙은 누렁이 한마리가 코를 바닥에 대고 자고 있다가 마지못해 게으른 기지개 켜며 꼬리만 살랑대고 있었다.
밭에 계시겠거니 동구 밖을 휘돌아 흐르는 내 따라 올라가다 비닐하우스 속에서 참외를 외발수레에 따 담아내시는 외숙모님을 뵙는다.
칠십 중반에 허리는 기역자로 굽으셨다.
젊어서부터 밭에 나가시면 아예 먹는 것조차 잊어버리시고 밭을 매셨다는 외숙모
잠깐 고랑에 나와 앉아 참외 깎아 주시며 그러셨다.
“저기 저 논 있잖어 저것두 걔가 산거구 이쪽 저 밭 뙈기두 그 애가 사놓구 간겨”
도회지에서 트럭 운전하는 외사촌 동생을 일컫는 말씀이다.
“지금 갖구 기신 땅두 부치기 심들어 하시문서 왜 그리키 자꾸 땅만 늘리신대유?”
그을린 얼굴에 맺힌 땀방울 바라보며 여쭈었을 때 그러셨다.
“뭐든지 땅이다가 묻는 게 질루 난겨. 그래서 땅이다가 묻으라구 했지. 저두 땅 냄새 맡구 컸으니께 나중에 나이들문 농사지러 들어 올티지 뭐.”
다 늦은 오후부터 시작해서 저물기 전까지 거들었던 참외 따내는 일이 그렇게 힘들 수가 없었다.
땅거미 지는 내 따라 내려와 늦은 저녁 서둘러 나서는 길
후래쉬 불 밝혀 가시며 여기 저기 헛간이며 토광 뒤지시면서 밭살이 좋아 부쳐 먹기 그만이라던 그 새로 산밭에서 난 농작물 이것 저것 챙겨 주시던 외숙모
평생을 땀흘려가며 땅에 사시면서 정작 땅에서 나는 것은 누구든 주지 못해 안달하시는 외숙모
틈틈이 논농사 짓는다 떠벌여 온 이 “나이롱 농삿꾼”의 눈에 외숙모의 이러한 삶은 시인의 싯구처럼 “소풍”이라기엔 너무 고단해 보였으나 또한 그것을 견뎌내는 힘은 땅에 대한 욕심에서가 아니라 내것이 아니라는 “무욕”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었을까? 두고 두고 내겐 화두였다.
청와대 새 주인이 같이 일하자고 부르신 분 중에 누군가가 “땅”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분이 계시다고 들린다.
그래서 도회지에 사는데도 불구하고 멀리 외떨어진 면소재지에 땅을 사놨다는 얘기다. 틀린 얘기가 아니다. 그게 무슨 대순가? 누구나 땅을 좋아할 수 있고 여건이 되면 좋아하는 것을 소유할 권리가 있잖은가?
단지 내가 궁금한 것은 그렇게 땅이 좋아서 사셨다는 그 논배미
물 대놓고 바지걷고 들어가 본적이 있는가?
때 되어 씻나락 붓고 손수 키운 모 한 줌 꼽아본적이 있는가?
바로 전에 팔았다는 밭뙈기에 콩 한 포기 심어본 적이 있는가?
호미로 북돋아 줄 적에 밭살이 얼마나 곱기나 하던가?
근 팔십 평생을 땅에서 흙 묻히고 살아오신 우리 외숙모
내 땅을 사랑하노라 말씀 하는 거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기에 .........
조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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