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2박3일에 한 번씩 울리는 손전화가 온것은 지난 금요일 오후 세시경이렷다.
“안녕하시온지요? **카드의 안**이옵니다”
이거이 또 스팸이로고! 혀를 차며 점잖게 거절하려는 참인데 상대방의 목소리가 너무 맑고 고왔고나.
“모레가 마님 생신인줄 알고 계시온지요?”
..........
그리하였더라!
지난주 언제쯤인가 달력에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몇 번이고 그려가면서
“이 날이 무슨날인지 아시오니까? .......... 부디 잊지 마옵소서!”
강조에 강조를 더하였건만 깜빡 잊고있던 차에 “뜻깊은 날”을 카드사의 녀인이 일깨워 줄 줄이야!
맑고 고운 목소리의 카드사 녀인 일러 가로되
백화점에서 고가로 파는 제품으로 금번 기획상품으로 저렴하게 내놓은 귀걸이와 목걸이 이온데 귀댁 마님의 마흔 아홉 번째 생신에 아주 잘 어울릴것 같사와 권하옵나니 작심만 하시오면 축하 전문과 함께 보석상자에 담아 보내드리오니 마님께옵서 원치 않으시면 그때 반품하셔도 늦지 않으오리다.
내 달리 마련한 선물도 없거니와 명실공히 사반세기 스무다섯해 동안 같이 살아 온 해에 맞는 “특별한 날”에 “특별한 선물”을 어찌 마다하리오.
즉석에서 그리하오만 너무 기대하지는 하지마오하는것이
둘 중에 하나를 고르던, 둘 다 좋다하던, 둘 다 마다하던 본인이 결정할터이니 두고 볼 일이긴하나 십중 팔구는 둘 다 마다할것이요.
이유인즉 지금껏 살아오면서 우리 내외가 주고받은 선물치고 이 가격의 반에 미치는것도 기억에 잘 없으오이다.
“하오면 내일 받아보실수 있도록 보내드릴터이니 그리 아옵소서”
“딸깍” 하고 전화끊는 소리가 흠칫 놀라리 만치 크게 들렸던 연유는 보내라 허락한 물건이 기실 너무 고가였던 탓에 잠시 잠깐 귀신에 홀린것이 아닌가 하였던 탓이라.
사무실 옥상에 올라 숨쉬기 운동 크게 두 번 하고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노래 한 곡 씩씩하게 부르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얼덜껼에 잘 저질렀다하더라.
그날이 금요일이니 이튿날은 토요일이되었더라.
여느때와 다름없이 눈 떠지자마자 주섬 주섬 가방 둘러메고 나간다.
늘 앉는 그 자리 낚싯대 펴고 앉아 미리 개어놓은 떡밥을 뭉쳐 던지고서 바라보니 건너편엔 더 부지런한 “미친 사람” 두어 명 자리하고 앉았고나.
올봄부터 주말이면 내내 이렇게 강가에 나와앉아 물고기 상대로 사기쳐 오면서 깨닫기를 날이 밝아온다는것은 어둠이 걷히는것이 아니라 빛이 어둠을 밀어낸다는것이라는 사실이라.
밀려난 어둠이 남기고 간 흔적들을 물안개가 설거지하듯 쓸어내기 시작하면 물고기들도 깨달음이 있는듯 입질을 멈추더라.
때가되었다는 생각에 낚싯대 거두기 시작할적 문자 하나 어김없이 날아온다.
“조반을 어찌하오리까?”
어서 오라는 재촉에 다름아니기에 간단히 답하기를
“금새 가오리니 잠시 지체토록하오”
...........
오십줄에 들어 시간을 죽이는 방법은 두 가지로다.
하나는 아주 고상하게 세월을 낚는다면서 강가에 앉아 물고기와 벗하는 일이요 다른 하나는 아주 고상하지 않게 컴 앞에 앉아 생면부지의 상대와 고스톱을 치는 일이로니 늦은 밥상 물리고 오전 잠깐 고상하지 않게 시간을 죽이고 있는데 인터폰이 울려온다.
“기이한 일이로다. 내 택배를 부른적이 없거늘..”
내자가 나가는 기척에 올것이 왔고나 하면서도 짐짓 모르는체 정신은 거기 쏟고 고스톱을 칠라하니 괜찮게 들어온 패 상대 점수만 올려준다.
“이게 대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한 아름 안고 들어와 옆에 앉아 살피더니 뜯어 볼 요량으로 칼을 찾아 거실로 가는고나. 그 사이 홀낏 쳐다보니 예의 그 카드사서 보낸것이 맞기는 맞는고나.
오래지 않아 다시 들어 온 내자가 상자를 뜯더니 웬 카드지 하면서 봉투 꺼내 읽는듯 잠시 잠잠하더니 벌떡 일어나 뒤에서 끌어안고 고개 감아 입맞춤을 하는고나!
“어허 이런 망측한 일이있나!”
“어이 이리 불시에 소첩에게 감당못할 감동을 선사하시나이까?!”
이것 저것 한참을 걸어도 보고 흔들어도 보고 만져도 보더니 “하온데 이 귀한것을 얼마나 주셨나이까?“ 하고 묻는고나.
“임자에게 고지 곧대로 알려주면 까무러치기 십상이니 진즉 119에 전화해 놓기전엔 말하지 않으오리.”
눈에 들어온 금붙이가 좋으면 궁금을 더하는것이 가격인가?
자꾸만 조르는 통에 마지못해 일러주니
“설마하니 그렇게까지야 하겠나이까?”하더니 금새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더라.
“내심 지난번 금모으기 할적 하나라도 남기면 나라 망하는 줄 알고 많지 않은 금붙이 임자 다그쳐 장롱 속속까지 뒤져 죄다 꺼내 바친것이 훗날 못내 서운하고 허전하기 이를데 없었던 차에 큰맘 먹고 저지른 일이니 기쁜 마음으로 거두어 주기 바라오!“
이렇게 이르고서 처음의 감동보다 가격 알고난 뒤 후폭풍이 더 강력하게 작용하는 사실에 기이하다 여기면서 아녀자들에게 금붙이에 관한한 정성보다 가격이 우선하여 감동으로 다가가는것인가하였더라.
“아무렴 어떠리오 내 오랜만에 착한 일 한번했고나” 하는 뿌듯함과 그래도 너무 과용한것 아닌가싶어 아까운 생각도 반인것이 짐작하길 십중 팔구 “소첩 오십문턱에 이르도록 검약을 신조로 여기며 살아왔거늘 어찌 한시라도 이 귀한것을 몸에 붙이고 맘편히 지내리오. 소첩 헤아리는 마음만 깊이 간직하옵고 금붙이는 반품하오리니 혜량하소서 !”
이런 기대가 여지없이 무너진 연유이기도 하다더라.
나이들면 보이는것에 집착하는 맘이 생기는갑다. 비싼 수업료 지불하고 또 하나 배웠고나. 씁쓸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이튿날 나갔던 아들들 속속 들어와 온가족이 다모였다.
해가지기를 기다려 모처럼 그럴듯한 곳 찾아 허리끈 풀어놓고 잔뜩 먹고 마시면서 밤 깊은줄 모르니 마흔 아홉 번째 내자의 생일은 이렇게 지났더라.
이튿날이니 월요일이 맞는고나
퇴근하는 길에 누군가가 국밥이 먹고 싶다하여 휩쓸려 저녁을 해결하고 퇴근하였더라. 내자께옵서는 전에 살던 동네 아줌씨들과 늦은 생일잔치 차려 먹고 늦는다 미리 기별 받은터라 잠시 잠깐 팔순 노모 더불어서 옛이야기듣다 잠자리에 들었더라.
늦게 귀가한 내자 기척에 잠이 깨어 다시 잠을 청하나 달아난 잠이 쉬 돌아오지 않는지라 문득 생각하기를
부처,
다 같이 산업전선에서 땀흐르려 일하는 산업전사요
계급과 보직을 떠나 조국근대화에 이바지하는 공이 어찌 크고 작음이 있겠나만 저녁 먹고 늦는 날의 내자는 늘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새에 표정이다.
옆에 눕는 아내 문득 정색하며 이르기를
“어제 주신 목걸이에 귀걸이 말씀이온데....”
들어보나 마나로다. 내 그럴 줄 미리 짐작못한 바도 아니로다.
밤새 잠을 설치고서 부랴 부랴 출근해서 직장동료 불러모아 모르는척 묻는척 자랑삼아 아니 늘어놓았겠나
“사랑하고 존경하는 동지 여러분!
이거이 무엇인지 알것는가?
이거이 걸어나 보았는가?
생일 선물이라구 우리집 냥반이 나모르게 시켜서 엊그제 택배로 받았다네
근디 이거이 얼마짜린줄 아는가?
이거이 자그마치 물경00짜라 라는거 아니겠나...”
쯧....
가깝고도 먼게 산업전우 아니겠는가?
땀흘려 일할적 니꺼 내꺼 안가리구 같이 헤쳐 나왔어도
내 없는것 네게 있는데 어찌 시샘이 없으리오.
“혹여 값만 비싸지 실속이 없는것은 아닌가?
“알이 너무 작은거이 워째 “뽄때”가 읎어뵈네“
“그거이 반값에도 그것보다 좋은거 살수 있을것 같은디“
.............
얼떨결에 감동먹은 탓에 잊었던 본전 생각이 어찌 아니나겠는가?
“그런 연유로 반품하겠다 이 말씀이오?”
“일전 20주년 때 사준 목걸이며 귀걸이 고스란히 다 있사옵고 이 값에 옷을 사도 몇 벌인데 값이 너무 과한듯 하와.....“ 말을 맺지 못하더라
“그 본전생각 나도 어찌 없을수며 뜻이 깊기로서 돈이 아니 아까울리 있겠소. 권한 사람 생면부지 모르는 사람이니 그 사람 말마따나 부담없이 반품하오. 날 밝는대로 전화해서 물러달라 이르리다.“
돌아누워도 날은 밝아오니 이튿날이 화요일이더라.
팔순 노모 들으실라 부엌에서 밥짓는 내자에게 소리낮춰 이르기를
“그리 반품하면 그 돈 고스란히 도로 통장으로 들어오리다만 말 그대로 여기까지오이다. 삼년 사년 세월이 흐른 후에 애들 결혼에 상견례라도 할라치면 이옷 저옷 골라입고 목걸이며 귀걸이며 옷에따라 철에 따라 달리 걸고 달아야 “뽄때”난다는 거 임자 아직 모르시오?
그때가서 되받은 돈 흔적없이 사라지고 그때 그 금붙이 그냥 잡고 있을걸 후회한들 무엇하오. 그래 금붙이 제값에 사고 제값에 지닐려면 금덩어리 근수달아 사놓으면 될일이지 목걸이며 귀걸이에 반지 팔찌 왜 맹그나? 다 주는 사람 정성이요. 사반세기 같이 살아놓고 임자 어느덧 오십 문턱 곱던 얼굴에 느느니 잔주름이요 애처로운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 한결같이 변치말고 이와같이 살고지고 비싸지만 변치않는 금붙이 정표삼아 목에걸고 귀에 달고 마음하나 한결같이 살아보자 하였거늘 .....
말이 길으니 팔순노모 다가와서 이르시길
“아범 아침부터 무슨 강연 하시는가?”
...........
출근길에 전화번호 쪽지에 적어주며 이리 전화하면 이런저런 이유들어 사는것이 좋다할것이나 본인이 싫다하니 두말 말고 반품 받아달라 하면 될것이니 알아서 하도록하오.
싫다좋다 말없이 집나서서 일보는데 문득 문자 하나 날아오니 이때가 오늘 아침 열한시 이십분이로구나.
“소첩 일시 마음이 어지러워 영감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였나이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길이 간직할터이니 그리 아옵소서!”
내심 흐뭇하여 답하기를
“내 생전 그대 만나 살아 온 세월이 꿈만같고 그대와 더불어 살아가는 나날 또한 꿈만같기를 앙망이오이다.”
조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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