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성촌이다 보니 촌수가 가장 높은 그 집을 대부네 라고 불렀다.
내 또래 친구를 대부라 불렀고 그의 아버지는 “으르신”이란 직함이 따라 붙었다. 부자 모두 나이 많은 꼬부랑 할아버지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권위를 태생적으로 타고났다. 더구나 부자 모두 원칙을 중시하는 성격도 같이 지녀서 “대부말씀”이라면 “말씀” 이 그대로 판결문이 될 정도로 “경우”에 어긋나는 품행을 삼갔다. 흠이라면 원칙을 너무 중시하다 보니 융통성이 부족해서 “꼬장배기”란 별명도 따랐다.
어느 해 여름
수리개라 부르는 수로를 수리조함에서 수로공사 전용포크레인 기계로 도랑치기 작업을 하고 있었다. 네 발로 엉금엉금 기어가면서 수로 가운데 퇴적된 모래흙을 수로 옆으로 퍼 올리는 작업이었다. 때마침 천렵시즌이다 보니 대부어르신께서 천렵 때 쓸 목적으로 수박을 너댓 통 수리개 옆 우거진 풀밭에 숨겨 놓았던 모양인데 이 사실을 알리 없는 기사가 작업 과정에 이 숨겨놓은 수박을 모래흙으로 덮어 버리는 바람에 수박이 그만 못 먹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안 대부으르신은 발을 동동 구르며 기사를 상대로 내 수박을 못 먹게 망쳤으니 변상해라 으름장을 놓았고 포클레인 기사는 수박을 거기다 감춰 놓은 것을 내 어찌 알았겠냐며 물어내란 것은 억울하다 맞서는 것이었다.
고성이 오가고 마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대부으르신이 우길 때는 그때마다 사람들이 옳다구나 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기사가 하소연 할 때도 그 말도 옳다하며 고개를 끄덕이다 보니 말싸움이 길어졌다. 이 즈음에 대부 으르신의 장남 곧 대부가 어디선가 나타나서 판결문인양 한마디 내뱉었다.
“이건 아부지가 잘못하신규”
주위는 금새 물 끼얹은 듯 조용해졌고 홈그라운드의 잇점을 등에 업고 가까스로 우세를 점하던 대부으르신의 낯빛이 바뀌면서 “니가 뭘 안다구 그랴” 외마디처럼 질렀다.
“수박을 한디다가 그리키 감춰 놓시문 우리두 찾기 어려운디 포클레인 기사가 거기 수박이 있는지 일일이 뒤져가문서 어느 천 년에 도랑을 치겄냐구유?
내 생애 대부으르신이 이리 허망하게 무너지는 것 보는 것은 처음이었으며 그 이유는 상대가 내심 “아니다” 하면서도 아버지이기 때문에 편을 들어주어야 하는 장남이란 데 커다란 충격을 받으신 모양이었다. 좌우당간 마을 사람들 모두를 고개 끄떡이게 만든 것은 대부으르신 이상으로 주변머리 없고 꼬장배기로 소문난 장남 대부였던 것이다.
사람 사는 것이 늘상 잔칫날처럼 흥겹고 재미난 것은 아니지만 지나고 봐도 힘들고 어려웠다고 기억될 정도로 재미없는 세월. 캐나다 밴쿠버 얼음판 위에서 벌이는 시합에서 우리가 이겼다는 승전보가 그나마 위안이 되던 차 오늘 있었던 여자 쇼트트랙 3000미터 경기에서 우리가 앞서 시합을 끝냈는데 심판들이 반칙을 했다는 이유로 메달 색깔을 바꾸어 주었다는 소식에 온 국민들이 분을 삭이지 못한다는 보도가 인터넷을 도배질한다.
이럴 수가 없다며 발을 동동 구르는 선수들의 억울함이나 하소연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나 가만 생각해보면 심판 개인이 판단한 것도 아니고 최첨단 비디오 판독까지 거쳐 심판진이 단체로 결정한 사항에 대해 지나치게 왈가 왈부하는것은 스포츠 정신이나 올림픽 정신에 비추어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사진을 보면 우리가 정당하게 앞서 나가려다 보니 부득이하게 팔을 뻗은 것이고 이것은 이 동네에서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이다 주장할 수 있겠으나 똑같은 마음으로 앞서 나가고 싶은 상대방 입장에서 방해를 받은 것 또한 사실처럼 여겨진다.
그래도 아니다 싶은 사람들이나 모르면 잠자코 있으라며 나무라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난 그들에게 되묻고 싶다.
만약에 이와 똑같은 상황이 우리와 중국의 입장만 바뀌어 일어났다면 무어라 하겠는가?
그때도 지금 우리가 주장하는 논리 그대로를 얘기하며 심판의 판정은 부당했으며 우리가 받은 금메달은 우리의 것이 아니므로 마땅히 중국에게 넘겨주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비단 스포츠 경기에서의 판정뿐만 아니라 사람이 살다보면 가부를 결정짓기가 대단히 애매한 경우가 있고 내 배가 고플수록 상대의 밥그릇이 커보인다는 것을 우린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그렇지만 아주 오래전 내 아버지라 할지라도 아닌것은 아니라던 대부으르신의 아들 대부는 이걸보고 무어라 했을지 그것이 참 궁금하다.
조강.
참고자료문제가 된 한국과 중국의 충돌은 결승선을 5바퀴 남기고 일어났다. 이은별
- ▲ 사진=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이에 대해 송재근 전 국가대표 코치는 "날끼리 부딪친 것은 고의성이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것이 팔 동작과 결부되면서 애매한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중국 선수가 밀려난 것은 손으로 밀쳤기 때문이 아니라 정상적인 경기 과정에서 일어난 스케이트 날의 접촉 때문인데도 마치 중국이 손 때문에 피해를 본 것처럼 비쳐서 한국이 실격당했다는 것이다. 송 전 코치는 "중국이 오히려 (한국의 김민정이 있는) 안쪽으로 밀고 들어오려 했기 때문에 중국의 진로 방해로 볼 측면도 있었다"고 말했다.
김범주 대한빙상경기연맹 쇼트트랙 심판이사는 "김민정의 손동작은 자연스런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심판들은 중국 선수의 진로를 방해하기 위해 막는 동작으로 본 것 같다"고 말했다. SBS해설위원으로 활동 중인 전 국가대표 전이경
조선일보 기사 중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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