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해가 운다.
조수석에 털썩 앉아 약봉지를 뒷좌석에 던져놓고
한 숨을 길게 내 쉬더니 복 받치는 설움 토해내듯 엉엉 소리내어 운다.
떨어진 알부민 수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받은 처방
뒤집어 지는 속 달래가며 두어 달 공들여 먹은 스테로이드제
좀 나아지는가 싶었는데, 이제는 좀 살겠다 싶었는데 도로 제자리로 떨어졌다한다.
지겹다고 한다.
살고 싶지 않다고도 한다.
십육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먹어야 하는 약도 지겨운데
그래도 남처럼 투석까지 가지 않은것만 해도 기적이라해서
그런가싶으면서 살아왔는데 이제는 정말 힘들어 죽겠다면서
어깨를 들썩이며 안해가 운다.
같이 가 볼걸...
다녀오라 이르고 주차장에 운전석 의자 재켜놓고 졸던 자신이 염치없어
계면쩍은 표정으로 아내를 어른답시고
어쩌겠는가?
이제껏 살아왔지 않았는가?
도로 내려앉은 그 자리에서도 이만큼 버텨왔으니
그만도 다행이라 여기고 그냥 친구삼아 살면 되지 않겠는가?
휴지와 함께 건네는 말이 참 멋적기 그지없는데
당해 본 사람 아니니 이 속을 어찌 알겠냐며 코 풀어가며 더 서럽게 운다.
가기로 했던 등산복 매장 쇼핑이 취소되었고
오리고기 먹기로 했던 저녁도 물건너 가버렸다.
근 달포간 젓가락 점지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냉장고에서 빈번한게 들락거리던 갓김치가
물 말은 밥술에 얹혀 모처럼 간을 맞춰 끼니를 때웠다.
설거지를 할까 말까하다 말고서 시간만 재고 있다
싸운 사람처럼 말없이 등 돌리고 자리에 들었다.
...............
좀 더 잘 해줄 수 있었는데.... 잘 해줘도 됐었는데
젊은 날 생각없이 뱉은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그대 가슴에 병으로 스몄고나
어두운 천장 바라보며 생각만 많아져 이리 저리 뒤척이다 문득 안해를 바라보니
안해가 잔다.
찌푸린 미간에 주름 깊은 얼굴로 안해가 잔다.
이불 덮어주고 손을 가만 쥐어보니 쥔 내손을 부여잡은 손에 힘이 전해온다.
그려, 그냥 사는것이다.
누구나 병 하나 벗삼아 그냥 살아가야하는 것이다.
아니지.
조물주가 공들여 맹근 당신 의사가 알면 얼마나 안다고
멀쩡한 당신 아프다고 말하는지도 몰라 정말 그런걸지도 몰라
색색 숨 고르며 안해는 잘도 자는데
잠을 잃어버린 내가 나를 어쩌지 못하고 혼자 중얼거리며 뒤척이는 밤.
조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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