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호천에서 부르는 노래

봄날이 아프게 가던 날

조강옹 2019. 12. 25. 06:01

세상의 휴일과 내 휴일이 개기일식처럼 맞아 떨어지는 엊그제 저녁

끝이 보이지 않는 취업의 문을 찾아 열기 위해 열공하는 아들 격려도 할겸

허구헌날 허리띠 졸라매는 일은 이쯤에서 그만해도 되지 않겠나하는 생각의 일치로

팔순 노모 모시고 모처럼 우리 내외 청주 시내로 이른바 "외식"을 하러 나갔다.

 

일찌기 시내 사는 친구가 일러 준 시내 모처 한우전문점

진열대 접시에 포장된 부위별 고기 골라 이층으로 올라가 구워먹는 집

어쩌다 한번 모처럼의 외식에서도 낮은 가격순으로 훑어보다 내려와 저가로 적힌 접시 고르던 평소와는 달리 높은 가격순으로 훑을것도 없이 고가군에서 갈빗살 두 접시 성큼 집어들고 계산대로 향하는 안해를 뒤따르면서 한편으로 이게 꿈인가 싶다가도 저렇게 몇번 하다 질나면 살림 말아먹는것은 일도 아니겠다. 우려하면서도 일전 태백 눈꽃 축제갔다가 거기서 구워먹던 쇠고기 맛을 기억해 내고 침을 꼴깍 삼키면서 이층으로 향하였다.

 

좀 이른 시간

너른 홀에 맘에 드는 자리 골라 앉아 시원소주 한 병 일찌감치 시켜놓고  고기를 굽는데

늘상 먹던 도야지의 그것과는 달리 올려놓은 적쇠 밑으로 양쪽에서 열망을 통해 올라오는  깨스불로 구워먹는  쇠고기 전용 "화로"였던지라 좀 낯이 설긴 설던 참에  양쪽 가 불길이 센쪽이다 싶어 고깃첨 올려놓고 익혀지길 기다리는데  "여러모로 박학다식한" 안해가 한 마디 한다.

 

"이보소  영감,  고깃첨을 가운데에 올려놓고 굽다가 익거든 양쪽 가로 밀어놓고 먹는것이지 그렇게 양 가로 고깃첨을 올려놓으면 더디 익는 법이라오"

 

"양 가에 불길이 올라오는데 어찌 가운데가 불이 괄하단 말이오. 내 지금 하는것이 맞소이다 그려!"

 

안해가 또 한 마디 명토 박아 이르기를

 

"양쪽 가에서  불길이 올라오는것은 맞으나 가운데 쪽으로 불길이 향하니 당연 가운데가 불이 괄한것이 정한 이치인데 어찌 그리 말을 하오"

 

모처럼의 외식에 날마다 먹는 쇠고기가 아닌지라

"그럼 그리 하오리다" 하고 시키는 대로 고깃첨을 가운데로 몰아 놓고 익기를 기다리는데 생각보다 쉬 익지를 아니하는지라  눈길 줄 곳이 마땅치 않아 두리번 거리다 식탁위에 일찌감치 소집되어 올라 온 시원소줏병과 눈이 마주쳤다.

 

본능적으로 때가 온지를 아는 듯 하여, 각오한듯한 눈빛으로  "비틀어 주시옵소서" 목을 길게 빼는듯이 보이는 지라.  정히 그러하다면 내 주저하지 않으리라 하는 마음으로 모가지 비틀어 팔순노모부터 시계방향으로 잔을 돌리고 "쇠고기는 색깔만 변하면 익은것이다" 자신에게 이르는 듯, 아들에게 가르치는듯  다짐삼아 한 마디 하면서 잔을 들어 모아  늘 그러하듯이 "우리 모두의 건강과 행복을..."  선창하면 가족 모두 후렴으로 "위하여" 하면서 덜 익은 고기 안주삼아 첫잔을 마시고 막 내려 놓는데  지나가던  "이모"가 다가오더니  손수 집게를 들어 고깃첨을 가에로 옮기면서 "불길이 가에서 올라오니 가에서 익히신 다음 가운데에 모아놓고 드시면 됩니다." 

 

.............

 

잠시 계면쩍을 안해가 안스러워 못 본 척, 못 들은 척 소주 한 잔 입에 넣고 천정 한 번 쳐다본다.

비로소 고기가 순서대로 익고 술잔이 때맞춰 비워지면서 적당히 취기가 오르니 이보다 더 좋을순없다.

 

허릿끈 끌러놓고 가족 모두 "맛있다" 눈빛으로 인사하면서 공깃밥에 냉면까지 배불리 먹고 나오면서  뒤따라 오는  안해를 돌아보며  "이쯤에서 무어 하실 말씀 없으시오"

 

"여러모로 박학다식한" 안해가 어찌 이 말을 못알아 들으시겠는가? 

 

 

"맛있게 먹었으면 됐지 무얼 그걸갖고 그러시오. 아니 그럼,  나보고 사과라도 하라 이 말씀이오?  쪼잔하게시리....." 

어림없다는 듯 "흥!" 하면서 무쇠주먹으로 어깨를  툭 치고 앞질러 가는데 누가보아도  명백한 폭력수준이다.

 

"암말두 말것을 괜한 말로 매만 벌었고나"

얼얼한 어깨 만지면서 가만 생각하니 이렇게 살아온것이 어제 오늘이 아니라 어언 스물하고도 일곱 해째던가 여덟 해째던가?!

생각느니,  입에 녹던 고기맛도 잠시  내 사는게 참 섧다 하는 생각 어찌 아니들겠는가.

내 생애 쉰 네번째 봄날이 요렇게  가심아프게 가서야 어디 쓰겄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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