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삼십하고도 팔년째 접어들면서 다시금 오기 힘든 엿새간의 휴가 중 이틀을 까먹고
세쨋날 중학교 시절 소풍갔던 기억이 떠올라 내비찍고 찾아간 곳
대략 이삼천원 정도하지 않을까?
주머니에서 지갑꺼내 챙겨들고 다가가니 ..............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나니.....
우리가 우리 모르게 남에게 베푼 선행이 있어 오늘 그 복을 내려받나보다 하였다.
때는 오월하고도 초사흗날
대략 햇살이 이러하고 잔디가 이러하고 사람들이 또한 이러하였다.
앞서가는 무리들 생각없이 주고받는 소리가 귓전에 들려오나니 그 높고 낮음이
우리와 사뭇 다른것이 더러는 신라국에서 해외여행차 온 무리들도 섞여있는듯 하였더라
누군가가 내게 마이크 불쑥 내밀고 백제에 대해 아는것이 있는가? 하고 묻는다면
의자왕, 삼천궁녀, 아직기와 왕인....... 부끄럽지만 요정도다.
삼국을 논할적 고구려의 대륙을 향한 기상과 신라의 삼국통일 등등 화려하고 입에 침 튀겨가며 자랑할 거리가 무진장한 반면 백제는 국운이 쇠하여 멸망할적 나당연합군에 쫒겨 이곳 낙화암에 말 그대로 꽃잎처럼 떨어져간 삼천궁녀의 절개 하나 내세울수 밖에 없는 가심아픈 전설 하나 간직하고 있을뿐이다.
그날 이후 꽃잎이 피고지기를 얼마였던가?
당시, 그 꽃잎처럼 떨어져간 삼천궁녀의 주검과 절개를 기리기도 하고
작금, 천민자본의 탐욕에 녀리기로는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할리 없는 어린 영령들이 저 남쪽바다 깊고 어두운 바닷물속에서 아직까지도 건져올려지지 못하고 있다.
이름하여 유람선
때가 때인지라!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운다는 확성기 노랫소리도 흘러나오고 더러는 따라 부르는 높은 음도 들려올듯하건만 아주 오랫적과 작금의 그 아픔을 되새기는듯 강물따라 조용히 흘러오고 흘러갈뿐이었다.
강 건너편
저 나무그늘진 저 길
저 나무그늘 아래 눈길이 자꾸만 간다.
데자뷔?
소맷귀 부여잡는 백제녀의 섬섬옥수 뿌리치고 돌아서서
고란사 스님따라 일엽편주 몸을 싣고 불문으로 들어오는 백제남과의 사랑이야기 하나 전해져 내려올듯도 하건만....
강물은 언제나 소리없이 흐르고
내려다 보는 사람들은 그저 말이 없다.
이 야트막한 산에 유독 이렇게 등이굽고 연로하신 소나무들이 많다.
정자 기둥을 액자삼아 넣어 보려했는데 렌즈를 덜 감았다.
고란사!
이천오백여년 전
이땅에 오신 부처님의 생신을 기리는 날이 얼마남지 않았는 고로 불 밝히듯 걸린 등이 환하다.
무명의 구름에 가리워진 내 마음 환히 밝혀 스스로 지혜롭게 하여주옵소서!
남들이 원 하나씩 얹어 건 등에 슬그머니 무임승차한다.
공짜는 입장료 건진것 하나로 족하거늘...
얼떨결에 소나기에 도랑물 불듯 불어난 욕심에 스스로 놀라 도리질하며 급히 거두어 들인다.
바위위에 단단히 지어졌으니 족히 천년은 쉬 견뎌내리라!
생각만큼 마음속에 단단하게 무엇 하나 뭉쳐진다.
대웅전 뒷곁 벽에 그려진 그림이다.
씌였으되 서기 518년 시마메,도요메, 이시미란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적시된 일본 처자 셋이서 백제의 비구니가 되기 위해 현해탄을 건너 이곳 고란사에 왔다는 전설을 그림으로 그려놓았다. 물론 목숨을 걸고서 왔다는 이야기고 그림의 빛이 바랜 만큼이나 오래된 이야기이고 보니 믿거나 말거나이다.
이 뒷곁에 약수터가 하나 있다.
그림에 그려지고 글로 이르기를 백제의 왕들이 이곳 약수를 즐겨 드셨는데 드시는 물이 고란사 물이란 증거로 이곳에 서식하는 고란초를 띄워 이곳 약수임을 증명시켜 드렸다는 것과 그리하여 이 절이름이 고란사로 부르게 되었다는 전해져 내려오는 얘기를 그림과 글로 풀어냈다.
강물로 뛰어내리는 삼천궁녀의 모습을 그린것인데 하필이면 용도 폐기된 소풍온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설물 보호에 협조해 달라는 안내판을 그림그려진 벽 밑에 세워놓고 보니 작금의 단원고 학생들이 생각나고 오래전과 작금의 물속 주검이 떠 올라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이름난 절은 대개가 심산유곡에 자리하고 있는데 비해 이곳 고란사는 부소산을 바람벽 삼아 지척에 백마강이 흐르고 앞이 훤히 트여있다.
출가란것이 속세를 등진다는 것인데 저 들판과 흐르는 강물속에 마음 다잡고 정진하기가 쉽지 않았을것이란 생각과 쉬 건널수 없는 백마강아 자연스레 불가와 속세를 경계삼아 주어 그렇지많은 않았을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안해의 택호는 정자다.
이름이 촌스럽다며 안동 아버님을 원망하는 소리 아직까지 종종 듣고
이런 정자 하나 나오면 나 만큼 정자를 좋아하고 정자에 오래도록 머무르는 사람 또 있겠냐하면
안해는 또다시 안동 아버님을 원망한다
내친김에 조강 스스로 솟아나는 시흥을 어쩌저 못해 한 수 읊어대기를
정자가 정자에 앉았으니 뉘정자가 내 정자런가?
정자에 오가는 이 모두가 내정자 아니라 머물다 떠나는데
두 정자 모두 내 정자라 머무는 이 조강뿐인가 하노라!
건너편 바라보나니
용케도 등산복입은 사람 하나 자동차 한대 지나가지 않다보니
아주 오래전부터 변하지 않았을듯한 그림 하나 눈에 들어온다.
언제적부터였는지 저런 어지러운 그림속에서도 숨은그림 찾아내듯
빗자루질하는 "이모" 한 분 눈에 들어온다.
안해에게 이르니 "이제 비로소 철이드는갑소!" "신라어" 답한다.
국제 결혼하여 삼십년을 넘게 살아왔음에도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여 손해보는 이 "백제남"의 처지가 스스로 딱하고 안쓰러울 뿐이다.
초등학교적에 배웠던 기억 어렵게 끄집어내게 했던 삼충사
황산벌 전투의 영웅 계백장군과 성충, 흥수 세 충신의 충정을 기리는 곳
역사를 전해듣다보면 이처럼 아무리 왕이 못났어도
아무리 나라의 지도층이 부패했어도
나라를 끝까지 소중히 여기고 목숨걸고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은 있다.
작금의 참사를 두고 우리의 지도자는
국가를 개조한다고 하고 잘못된 관행을 적폐한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 "말씀"이 공허하게 들릴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민자본의 탐욕에 눈이 어두워 엄청난 죄악을 저지른 무리들은 여전히 무대뒤에 숨어있고 그들을 들추어 내어 징벌해야할 위치에 있는 무리들은 그 탐욕을 나누어 받는 댓가로 죄악을 감싸 덮으려는 듯 보인다. 하여, 월급 270만원짜리 계약직 선장- 칠순 노인의 부적절한 행위에 대해서만 백성들을 세뇌시키려는 듯 질리도록 보여주고 또 보여주며 비난의 화살을 쏟아붓고 있다.
허나, 우리는 안다.
이대로 가다가는 언젠가 우리의 대한민국도
저 백마강에 꽃잎처럼 떨어져간 삼천궁녀처럼
혹은 영문도 모른채 춥고 어두운 바다속에 가라앉아 건져 올려지지 못하는 젊은 영령들 처럼
더 깊고 더 어두운 심연속으로 가라앉을지도 모른다는,
그리하여 찾아온 이 나라 강산의 봄은
아주 오래전 백제의 봄 보다 더 쓸쓸하고 더 고적할지 모른다는 우려.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말이 이렇게 섬뜩하게 들리는 2014년 늦은 봄날은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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