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42년 6개월의 직장 생활을 끝냈다.
마지막 일 년을 자회사에서 전문직으로 일했다.
입사와 동시에 회사는 새로운 사업으로 순식간에 커졌고 그에 따른 업무량도 뻥튀기듯 늘어났다.
사료와 물을 공급 받으며 하루에 한 개씩 알을 낳아야만 하는 저 닭의 신세와 크게 다를 바 없는 -
젊은 사우들은 쉽게 해내는 그 "성과 창출"의 과제와 씨름하면서 보내는 동안 난 늘 허우적거렸다.
방전된 배터리처럼 난 지쳤고 때가 되었던 것이다.
더 일할 수 있는 일 년을 포기하고 사직했다.
"42년 일했으니 42년 쉬어야지요."
장차 무얼 할 거냐는 사우들의 물음에 난 짧게 답했다.
지척에 미호천 자전거 도로가 있고 그 도로는 금강 하구 둑까지 흐르는 강물따라 뻗어있었다.
그보다 더 가까이 도서관이 있고 그 도서관으로 가는 산길에 갈잎이 소복이 쌓이더니 어느덧 겨울의 한 가운데 와있다.
가까이 지내던 옛 지인들로부터 이따금씩 전화를 받았다.
어떤 때는 도서관에서, 어떤 때는 미호천 자전거 도로에서, 그리고 어떤 때는 한달 살이 작정하고 내려간 제주도- 능선따
라 오름을 걷고 있을 때도…….
"아주 좋아! 그런데 왠지 모르게 편하지가 않아. 불편해" 라고 말했다.
지난 반년
"일하지 않고 먹고 노는 백수"라는 처지가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고 두렵기 조차 하였다.
이 즈음에서야 비로소 "일하지 않고 먹고 놀아도 되는 백수"로 자각하기에 이르렀고 다소간 홀가분해졌다.
예의 그 불편함이 채 가시지 않은 마음으로 날아 온 필리핀에서의 하루
해변에서 한 나절 노닐다 오기로 작정하고 배를 기다렸다.
어디선가 조악한 기념품을 갖고 와서 그들만의 언어로 팔아 달라 간청하더니 우리의 무관심을 눈치채고 이내 물건을 수습
해서 바다 쪽으로 멀어져갔다.
저 길없는 길로 계속가면 바다인데 물위를 걷기라도 할 것인가?
때를 맞추지 못해 미안하다는 듯 우리를 데리러 온 배는 저렇게 양 팔을 벌려 새색시 절하는 듯 한 자세로 우리를
맞았다.
올해 구십 둘되시는 어머니께옵서 말씀이 있으셨다.
"나이 육십에 들어 늙음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고 칠십에 드니 죽음에 대해 또한 생각이 많아지더라!"
짧은 백발과 이맛박의 주름 - 이 동네서 잔뼈가 굵은 관록이 넘쳐나는 저 늙은이 보다 내가 더 늙었을 것이라는 빗나가
지 않을 이 어렵지 않은 짐작 내 이미 환갑을 지나 진갑에 이르렀는데 어찌 늙음에 대해 생각이 없으랴!
아침에 일어난 젊은 딸들은 거울을 보면서 어제보다 더 예뻐진 자신의 모습에 흡족해 하고 같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
습을 바라보며 늙은 어머니들은 검지와 중지를 다리미 삼아 눈가의 잔주름을 펴보지만 어쩔 수 없이 늙어감을 아쉬워 할
것이다. 그 딸은 어머니가 되고 그 어머니는 할머니가 될 터, 늙어지면 못노나니 젊어서 노세
잘 왔다. 잘 왔어!
주문처럼 외면서 보낸, 바야흐로 필리핀에서의 나흘째 되는 날이다.
잔뜩 힘주어 돌아가는 디젤엔진의 소음 속에 기관실을 바람벽한 곳에 그려진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를 저런 곳으로 데려가는 가부다.
"우아하고 거만하게!"
회갑을 기념해서 다녀온 유럽여행
이태리에서 대여섯 명씩 무리지어 지프차 타고 내리는 시내 관광
훤칠한 키에 깔끔한 복장의 기사가 차에서 내릴 때 저렇게 손잡아 주면 "우아하고 거만하게" 자세잡고 내리라던 가이드가
한 말이 문득 떠올랐다.
"때론 우아함이 거만함을 덮을 때도 있겠거니..."
우리들 세상
아담하고 지극히 아름다운 이 작은 해변을 전세낸듯 한 나절 노닐다 가리라.
배에서 내리자 마라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다소간 시간이 남으니 이 아해를 따라가면 물을 볼 수 있으라하였다.
이십 여분 따라 올라가 보니 그리됨에 다 같이 기뻐하더라.
내려오는 길
해변에 다 다른 곳에 서너 채의 전통 가옥이 눈에 들어오고
한국어도 아니고 영어도 아니고 필리핀어도 아니고 어찌 어찌 흥정해서 수박만 한 열매하나 얻었다.
저 높은 곳을 다람쥐보다도 더 쉽게 오르는 모습은 이미 "곡예" 수준을 넘었고
탄성을 자아내면서 지켜보는 것 만으로도 본전은 건졌다는 생각에 흡족했다.
이 땅위에서, 저 바다에서 저렇게 노닐기 위해서는
아직은 일을 해야 하고
아주 멀리 두고 온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여기, 이 장소와 이 시간만큼은 온전히 우리들의 것이며 아해들같이 노닐다 가리라
차를 타고 가다가 신호가 막혀 멈추었을 때
문득 고개를 돌리면 옆에 같이 청색 불을 기다리는 차안의 사람들이 있다.
때론 고급 승용차에서 핸들에 턱을 얹고 있는 사람이 보일 때도 있고
창가에 줄지어 앉아 이어폰을 끼고 스맛폰을 들여다보는 젊은이들이 보일 때도 있다.
아주 이따금씩 펄쩍 펄쩍 뛰며 노니는 관광객들의 모습이 보일 때도 있다.
매번은 아니지만 그 짧은 시간 훔쳐보듯 바라본 그 "차안"의 사람들의 처지가 나보다는 나아 보이는 경우가 많았던 듯
하다.
나름대로 애환이 있고 짊어지고 가야 할 생의 무게가 있겠지만 저 원주민들과 공평하게 맞이한 한 나절
멀리까지 와서 작정하고 노닌 우리의 시간보다 저들의 시간이 더 여유로워 보였고 그만큼 나아보였다.
서로 처지를 바꾸어도 고만고만한 것이 사람 사는 게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면서도 매번 느끼는 착시현상
이다.
신호가 바뀌었으니 이제 서로 작별하고 서로 주어진 길 가는 것이다하였다.
마지막 촛불이 꺼지기전 발하는 빛
하루 종일 세상을 밝혔던 해가 서산으로 지면서 발하는 빛
머지않아 맞이해야 할 이 세상과 작별하면서 내가 발해야 - 발 할 수 있는 빛은 무슨 색일까
얼마큼 환하고 아름다울까?
조치원 읍내만 한 이곳 필리핀의 작은 도시에 밤이 오고 어둠이 짙어오면 저렇게 한글 간판이 밝아온다.
숙소로 돌아가면 밤늦게 남은 맥주 마시면서 우리가 밝힐 수있는 불- 빛 이야기나 하면서 돌아 갈 채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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