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두고 가신 땅에 두 계절이 바뀌었습니다.
꽃이 지는 계절은 가뭄이 극심했고
여름은 잔인했습니다.
엄청난 비에
여기저기 논 밭이 상했고 곳곳에 따라 농사를 망친 곳도 적잖았습니다.
그럼에도
어머니께옵서 두고 가신 이땅은 무사히 두 계절을 지났습니다.
일만 오천 년 전
구석기인들이 벼를 재배했다는 미호강변
소로리에서 제방을 따라 팔결교 쪽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다 세 컷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이른 봄
마을 어귀마다 불 밝히듯 노랗게 피어나던 개나리꽃들이 하늘에 별이 되어 머물다
소나기 되어 밤새 퍼붓듯 들판을 저렇게 물들였습니다.
비록 내 논이 아니어도. 내가 심은 벼가 아니어도
눈에 들어오는 저 풍요는 누구에게나 자연의 선물이요. 신의 축복인 듯합니다.
줌을 당기고 밀기를 반복하면서
저 들판 어디서
두렁 따라 뛰노는 구석기시대의 아해들 모습과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오래전 발동기에 피대 걸은 양수기로 밤새 물을 푸셨던 아버지의 기침 소리도 들려옵니다.
이내 그것은 저 들판의 곡식을 여물게 하는 신의 입김-
금빛 바다에 파도 일구는 장난 섞인 바람 지나는 소리였음에 다시금 페달을 밟습니다.
지난 일요일이었습니다. 벼 벤다고 전갈받아 들에 나갔더니
해 짧은 오후, 네 시가 다 되어 가는데 서너 바퀴 돌다 고장이 난 콤바인 논배미에 세워놓고
서너 명 일꾼들이 달려들어 앞부분 카바를 뜯고 스패너를 찾아 나사를 조이고 하는 품새가
내일 비 온다는데 오늘 베기는 영 글렀다 낙담하며 집으로 왔는데
늦은 저녁 사람 좋은 신 반장이 전화를 주어 기계는 곧바로 수리가 되어 두 배미 모두 다 베었다 알려주었습니다.
두 다리 쭉 뻗고 편한 잠 자고나니
강가에 안개가 자욱한 것이 비마저 오지 않을 듯하였습니다.
올봄
농어촌공사에서 배수로 개량공사를 해주는 바람에 논 평수가 줄어든 만큼
두터워진 두렁 따라 들깨를 심었습니다.
어머니 생전에 끝을 키 맞춰 심어야 한다는 말씀 잊지 않았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두 계절을 견디어 지난주 수요일인가 해서 베어 둑에 뉘어 놓았는데
벼를 얼른 베야 깨를 털 텐데 새들이 다 까먹으면 어쩌나 하는 에미의 걱정은 쓸데 없어졌습니다.
벼 베인 논에 포장을 펴고 바짝 마른 들깻단 주섬주섬 모아놓고 사랑간 부지깽이만 한 막대로 톡톡 털면
화들짝 놀란 깨알들이 서로 튀어나와 포장 위에 "책책" 쏟아지는 소리 더불어 나는 먼지조차 얼마나 고소한지
"이것 제법 많이 나오겠는걸!" 느낌에 손에 힘이 더해가는데
"세게 턴다고 많이 나오는 것 아니니 살살 달개가며 털어유!"
에미의 질책에 장난삼아 힘을 더해 탈탈 털었습니다.
농로 전봇대에 설치된 콘센트에 선풍기를 코드를 꽂고 쭉정이를 가려냈는데도
서 말은 족히 되겠다며 들었다 놨다 반복하는 안해는 어느덧 시골 할매가 되어있습니다.
기대치보다 많은 수확에 감사하며
생전을
삼대, 열세 식구
제일 먼저 기침하시어 제일 늦게 잠자리에 드시며 살다 가신 어머니!
내려다보시면 보이실 것 같은 이 풍요가
떠나시면서 자식을 위한 마지막 기도가 이 땅에서 이루어진 것은 아닌지
하여, 말씀올립니다. 어머니
제게 부족함 전혀없습니다.
그리고 여전히그립습니다.
어머니!
가신지 207일
어디 계시건
부디 강녕하옵소서!
각리 중학교는 목령산으로 가는 산책로를 이웃해있습니다.
학생들이 장난삼아 빨랫줄에 양말 걸어놓듯 낙엽에 단상 적어 걸었습니다.
더 나은 시설을 위해 공사 중인데 불가피하게 운동장은 좁아지는 듯합니다.
결과가,
모쪼록 학생들에게 더 좋은 학교로 변하기를 소망합니다.
나아가, 이 세상 모두 어제 보다 나은 내일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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