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노나니
.......
“노세”의 의미에 관광이 포함된다면 위의 노랫말 틀린 것 하나 없습니다.
산에 오르는 것도 만만치 않고 이리 저리 끌려 다니다 시피 다니다가 저녁 먹고 때로는 비행기로 때로는 버스로 한 두 시간 이동하고 자정이다 돼서야 잠자리에 드는 강행군이자 고행이었습니다. 처음 하루 이틀은 “돈 내고 이게 웬 고생이냐”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젊어서 많이덜 댕기시길 권해드리면서 오늘은 황룡동굴 가는 길부터 말씀 시작합니다.
숙소를 나서서 찾아가는 길은 내 따라 한참 갑니다.
군데군데 아낙들이 모여 빨래하는 모습도 보이고 사람이 살까 싶지 않게 짓다가 만 것같이 허름한 단층 또는 이층집도 보입니다. 빨래가 널린 것 보고서 사람이 사는 집이란 걸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냇가에 몰려나와 빨래하는 아낙들의 모습에 버스가 타임머신인양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우리 유년시절 냇가에 빨래하던 누나들의 모습을 보는 듯 했습니다.

황룡동굴 입구
나무색깔이 참 곱다했더니 못 하나 박지 않고 지었다고 가이드가 자랑삼아 얘기합니다.
실제로 못을 보지 못했습니다만 못이야 말부터가 봤어도 못 본것이고 못봤어도 못 본거이니
제쳐두고 밑에 기둥 부분은 어쩔 수 없이 바닥에 기초볼트 박아 처리한 것이 눈에 띄어 여기까지라는 생각에 좀 아쉽긴 했습니다.
입구는 병목이랄지 굴목이라 고해야 할지 엄청나게 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명절 기차표 끊는 것 보다 더 복잡했습니다.

서로 밀고 밀리고 한참 있다 한걸음 앞으로 …….
그렇게 천국으로 오르는 계단 오르듯 올라가는 길
아랫녘 사투리 진한 억양의 모국어가 들려옵니다.
엊그제 까지 콩밭 메시다가 아들며느리가 여권 맹글어 구경 댕겨오시라 성화에 등 뗘밀려 오신 것 같이 그을린 얼굴의 숙모 같고 삼촌 같고 형님 같고 형수 같은 아주머니 아쩌씨덜 밀고 밀리며 비명도 지르고 웃기도 하면서 즐거운 표정들이십니다.
잘덜 오셨습니다.
잘덜 보내드렸습니다.
이 분덜을 여기까지 보내주신 동방예의지국에 기신 아들 메누님덜
같은 자식입장에서 동생 입장에서 여러분덜이 고맙고 자랑스럽습니다.
덕분에 부모님덜 형님덜 모두 건강하실티구 아들메누님덜 동생지수시덜 사업번창하시고 있은 복 읎는 복 죄다 통털어 받으실 거라 확신합니다.
어렵고 심들게 빠져 나오니 정작 동굴 입구는 고속도로 터널같이 넓고 환합니다.
가이드가 왠지 쫓기는 듯 서두르는 듯 어서 오라 재촉을 합니다.
그래도 안 되겠다 싶은지 갑자기 전부 모이라하더니
비장한 얼굴을 하고서는 말하기를 앞길이 계단도 엄청나게 많고 엄청나게 험난하니 엥간하시문 자신읎는 분덜, 여기서 포기하실 분덜 기시문 일찌감치 포기하시구 입구에서 기다시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의지의 한국인덜, 자랑스런 우리 일행덜
포기한다 손드는 이 하나 없습니다.
할 수 없다는 듯 앞장선 가이드 따라 공포의 그 계단 중간쯤 까지 몸에 땀이 배일 정도로 속도 붙여 올라왔습니다.
자연 연세 드신 분덜 몇 분이 뒤에 쳐지자 가이드가 승질을 냅니다.
“포기해야 할 때 포기하지 않는 그대덜이 미워요”
강제 탈락 시키기에 이릅니다.
뒤에 그 사유를 알았습니다.
전편에 말씀 올린 그 약방에 서둘러 우리 일행을 뫼셔다 디려야 한다는 막중한 사명감에 불탔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가이드와 여행객의 갈등은 패키지 여행의 단점이자 문제점이자 개선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아직까지 이해가 안되시는 분덜은 첫편부터 찬찬히 읽어 오시기 바랍니다.
동굴이라!
사반세기전 안동처자와 혼인하기로 약정맺구 첫 번째 이른바 데이트라는 것을 하기위해 선정한 곳이 바로 단양 고수동굴이었습니다.
후에 영월로 울산으로 삼척으로 돌아댕겨봤습니다.
하나같이 기묘하고 아름답고 조명이 뒤에서 받쳐줘서 그렇기도 하지만 사위가 모두 다 앉아서 도 닦고 싶은 자리라는 것은 같은 점입니다.
아기자기한 맛은 우리 것이 낫다고 어거지로 생각도 해 봅니다만 기분 언짢을 정도로 우리나라 동굴하고 비교가 되지 않게 너무 크고 넓고 웅장하고 어메이징하고 그랬습니다.
여기꺼정도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다 했습니다. 땅 덩어리 넓다 보니 그럴 수 있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동굴이 얼마나 넓고 큰지 굴 안에 내가 흐르고 거기에 보트 띄워 한참을 유람선 타고 유람하듯하면서 밖으로 나왔습니다.
가이드에 의해 중도에서 강제 탈락된 일행과 눈물어린 합류를 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은 사람 얘기로 마무리 합니다.
오십대 중반쯤으로 보였습니다.
일행 중에 바깥양반이 걸음걸이가 다소 불편한 부부가 기셨습니다.
아내가 들려준 바에 의하면 바깥냥반이 몇 년 전에 (중)풍을 맞으셨다는 겁니다.
자연, 걸음걸이가 우둔하고 그러다보니 산에 오를 때나 내려올 때나 늘상 뒤 쳐져 따라오기 바쁜 분이었는데 중간심사에서 가이드에게 탈락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이에 굴하지 않고 그 험한 오르막길, 계단 오를 적에나 어둡고 좁은 소롯길 내리막에나 안주인- 아주머니께서는 남편의 허리춤을 바짝 쥐고 앞에서 끌기도 하고 뒤에서 밀기도 하면서 그 험하고 어려운 길을 두 분이 끝까지, 우리와 함께 한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그래서 모든 사람이 외면하고 고개 돌릴 때 가까이 다가가 부족한 부분 아낌없이 채워가면서 끝까지 함께 하는 것이 부부라는 것을 몸소 보여준 그분들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요즘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분덜, 어렵고 심들다구 쉽게 등 돌리고 각기 갈 길 가시는 분덜 이리키 좀 살아갔으문 좋겠다는 생각도 잠시 했습니다.
이리키 왼종일 쪼그려 앉으셔서 버신 돈으로 무엇을 하시려는걸까?
아마도 집에 기신 영감님 고무신아라두 한 켤레 사 디릴라구 그러는것은 아닐까 생각하니 주무시는 할머니 모습도 참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다음에 또 이어집니다.
조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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