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호천에서 부르는 노래

논두렁에서......

조강옹 2019. 12. 23. 17:22

 

세상사 공평한 것이 경지정리 일찌감치 끝낸 반듯한 들녘

아홉마지기 논배미가 수로 바로 옆에 위치하다 보니

요번 그 지독한 가뭄에도 물대기는 그만이라

연신 갈라진 논바닥 소방차 들이대고 물 부어 줄 때도

우리 논의 모들은 종아리 까지 물에 담근 채 느긋하게 물놀이 즐기던 대가로


엊그제 내린 비에

양쪽 밭에 떨어진 빗물 왕창 하나뿐인 배수로로 몰리다 보니 논이라곤 우리 논 하나 뿐이요 지대는 당연히 제일 낮고 보니 미쳐 빠져나가지 못한 그 빗물이 죄다 우리 논에 들어와 모 모가지 꺼정 차오르더니 그거 빠지는데 족히 이틀은 걸렸다.

댐 역할까지 떠 맡고 보니 토요일은 배수로 도랑치다 끝내고


일요일 아침

느긋하게 아침 식사 끝내고

예초기 둘러메고 아내 오토바이 뒤에 타고 논으로 나갔다.


옆에 밭, 딸기 걷어내고 좀 한가한 내외

나는 죽어도 마누라 논일은 안시킨다는 어깃장에

나는 죽어도 마누라 밭일은 안시킨다 맞장구 치며

담배 한대씩 나누어 피고 고랑따라 수색작전을 벌인다.


모 이을 때도 그러하거니와

피사리 할 때도 마찬가지로 나는 황새걸음으로 성큼성큼이고

아내는 눈 밝히고 벗풀하나 그냥 두지 못하고 솎아대다 보니

내 하는 일이라곤 늘상 뒤돌아보며 얼른오라 재촉하는 일뿐이다.


"얼릉 와아~"


'뒤에 빼먹었니더'


"어디"


'발 밑에'


"안뵈는 디"


'이 냥반이 눈 감고 댕기나'


"그려 잘났어. 내 나이 돼봐"


'그까짓 두 살 더 먹은 거 가지고 어지간히 행세하네'


"오뉴월 하루벹이 어딘디"


'잘났다'


"말버릇 하구는.."


'누가 먼저 시작했는데'


....................


시골에서 자란 아내

끌끌난 말단 공무원이라도 지차라구 하니

농사일에 시부모 모실 일은 읎을거라는 생각 어찌 없었을까?

안됐다는 생각에 뒤돌아 보니 올무채 한 움큼 푸대에 넣다 말고

그 마음 다 안다는 듯이 씩 웃는다.


둑에 나와 푸대 털고 보면 내겐 피 멫포기이고

아내가 뱉어낸 푸대에선 온갖 잡초들까지 섞여 푸짐하다.


일 자체가 시간정해 놓고 하는 일이 아니니 시계가져 올 일이 없고

시장기가 솔솔 도는게 두어시 쯤 되어 가는 모양이다.

옆집 하우스 안에 애덜 머리통 만한 수박 두어개 갖고 나와 논둑에 앉아 뻐개 먹고

다시 들어가기 전 먹은 거 제각기 반납한다.

아내는 하우스 골에 숨어 앉아서 보고 나는 멀리 고속도로 바라보면서 서서 ...


..................


피사리란 것도 그렇고 모 잇는 것도 그렇고 일단 나오면 들어가기 싫다.

허리 한 번씩 뒤로 재끼고선 나는 논두렁이나 깎을 요량으로 예초기 시동걸어 논둑으로 가고 아내는 다시금 고랑따라 나간다.


경사진 둑에 한껏 키자랑 하던 잡초들 밑둥아리 휘둘러 쳐대기 시작한다.

가끔씩 돌멩이 채여 '탱'소리에 깜짝 깜짝 놀래기도 하고

잘린 갈대조각 눈에 들어가 부르르 눈감기며 눈물도 흘려가면서

한참을 나가다 시동끄고 앉은 자리 풀더미 사이 말뚝 하나 언뜻 눈에 들어온다.


지나온 세월치고는 아직가지 생생한 말뚝 하나

선친께서 생전에 이 논에 농사지을 적

비료 골고루 주기위해 표식으로 박아 놓으셨던 그 말뚝이다.


16년 전 쯤, 아니 그 이전에

비료 주시다 바가지 옆에 놓고 내처럼 담배 피고 앉아 계셨을지도 모를 아버지

공부 잘하면 펜대잡고 편히 살 수 있다 말씀하시던 아버지

그러면서 정작 아홉마지기 논 내게 남겨 놓으시고 가셨다.


못난 아들은 그 '편히 살수 있다'는 길 접어 두고

당신께서 앉아 계셨을 여기 이 자리에서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걸 알고 계실까?


"뭐해요? 얼빠진 사람메루"


'...........................'


"얼릉하고 고마 가입시더"


'알었어'


예초기 등에 지며 쳐다본 논 배미

허리 꺽은 아내 뒤로 하얀 나비 한 마리가 너풀대며 날아가고 있었다.


아버지... 

 

 

2001년7월2일

 

조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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