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애 이름이 원래 일순인디 애덜이 삥순이라구 불렀지유.
아카시아 향기 물씬 풍기던 어느 늦은 봄날 우린 츰으루 만났어유.
줄잡어두 한 삼십여년 전 얘기지유.
운동장가에 '100억불 수출 1000불 소득' 이란 커다란 입간판을 고속도로쪽으로 세워놓은 시골 중핵교-
전교생이라야 오륙백 쯤 되는 남녀 공학 -
지가 이학년때 일인디 그날은 월말고사가 끝난 날이었어유.
담임선생님께서 저보구 남어서 채점 좀 하구 가라구 해서 교실에 혼자 남어 있었지유.
어린맘에 선생님이 저를 이쁘게 보시니께 이런것두 시키는 것이리라는 생각에 신이나서 열심히 했지유.
한참을 채점하다 싫증이나서 운동장을 내려다 보구 있는디 운동장에선 일학년 여학생덜이 편을 짜서 핸드볼을 하구 있더라구유.
보노라니께 몸집이 작은 여학생 하나가 눈에 띄더라구유.
구석징이 어실렁 거리다가 공만 잡었다 하문 잽싸게 수비덜 제껴가문서 번번이 골을 넣는 여학생이 눈에 들어온거유.
그거 한참 구경하다 채점하다 어지간해서 경기두 끝날 즈음 채점두 끝이 났어유.
학생덜 하나 둘씩 걸어 들어오는거 보구 저두 그만 가야겄다는 생각을 했던게뷰.
채점한 시험지 들구서 아래층 교무실로 내려가는디 복도에서 지덜끼리 후다닥 거리문서 장난치던 그 여학생이 저하구 부디치문서 시험지가 우수수 쏟아진거지유.
거, 영화에서 보문 대게 주인공찌리는 그리키덜 만나잖어유.
지가 겪어봐서 아는디 영화나 실화나 틀릴거 하나 읎더라구유.
좌당간 그거 같이 주섬주섬 주서 모으다가 서루 눈이 마주치구 잠깐 화면이 정지된 듯 하다 어색한 웃음 웃구 다시 주서 모이구 ..
'오빠, 미안해서 어띠키 한대유?'
'응 괜찮어...'
오빠.........
손위루 누나덜만 셋. 그 층층시하에서 시달리다 생전 처음 들어본 그 '오빠'소리가 왜 그리키 좋았던지 지금꺼정두 생각하문 가심팍이 아려와유.
어찌됐거나 그리키 해서 시험지 챙켜들구 교무실 댕겨서 집으루 갔어유.
이리키 하문 더이상 얘기 할 건덕지가 읎지유.
문제는 그리키 교무실 댕겨와서 책가방 챙겨갖구 니려오다 그 여학생하구 또 복도에서 마주친거유
'오빠 집에 가세유?'
아! 그 '오빠'소리에 또 한번 전율을 느끼구 우린 자연시럽게 같이 걸어갔지유.
집에 갈라문 고속도로옆으루다가 난 길을 따라 장터까지 가서 거기서 갈라지게끔 되어있었거던유
그날 우린 '이름이 뭐냐?'로 시작해서 가족 얘기꺼정 하문서 같이 걸었어유.
집으루 오문서 가심속에 아니 목구녕꺼정 뭔가 꽉 차올르는거 같은 행복감을 츰 느겼어유.
그날 이후루다가 학교가 파해두 냉큼 집에 가질 못했어유.
다른 애덜 전부 집에 간 뒤에 약속이나 한드끼 같이 장터꺼정 걸어가군 했지유.
어띠키 보문 지 생애 가장 행복했던 이 년이었어유.
세월은 그리키 흘러 지가 학교를 졸업하니께 자연뽕으루다가 작별을 한거지유.
어려서 그랬던지 편지를 한다거나 그런 기약두 읎이 그냥 헤어진거유.
지금 생각해두 그 이후루다가 장터에서건 어디서건 한 번만 마주쳤어두 아마 지금쯤 지 인생의 반려자가 되었을 거라는 그런 생각을 해봐유.
일단 여기서 각을 설해놓구유
웃동네 친구 아부지께서 별세를 하셨어유.
여기 저기 나가있던 친구덜 하나 둘 모여들어 긴 상 한자리 차지하구 술을 마시거나 저녁을 먹거나 하문서 적당히 어수선한 자리.
그 지가 댕긴 시골 중핵교 동창찌리 좋아서 결혼한 커플이 하나 있어유.
학교 댕길적 어지간히 놀리기도 했던 그 여학생이 친구 부인으루다가 같이 늙어 맞은편에 앉아 있게 되었더란 말씀이지유.
한때는 이리키 모일적이문 짓궂은 친구덜이 어지간히 놀려대기두 했지만 이젠 놀린다구 놀림당할 나이두 아니다 보니께 그냥 이런 저련 얘기하다가 용케 둘이 학교댕길 적 얘길 좀 했어유.
근디 잠시 말이 끊기구 앞에 놓인 맥주컵 들어서 입에 댈려구 하는 순간
옆에서 '삥땡 위루다가 있으문 나와봐!' 하는 소리를 들은거유.
아까전부터 줄곧 벌어진 섰다판에 왜 그때 그 '삥땡!!' 소리가 내 가슴을 치는지
그 삥순이가 같이 늙어가는 친구 부인하구 같은 동네살었다는 생각이 퍼뜩 떠 올러서 잔을 내려놓구서 맞은편에 같이 늙어가는 친구 부인한티 물었지유.
'참! 그 삥순이 소식 혹시 알어?'
'........'
'그 삥순이 내가 좋아했던 거 알어?'
같이 늙어가는 친구 부인은 잠시 천장을 쳐다보다 하는 말이
'좋은 사람 만나 시집가서 남매꺼정 두구 잠시 잠깐 잘 살았댜.
올림픽 열리던 해에 그 남편이 과로사루다가 숨지구 ..
..친정 발 끊은지 오래됐댜...?
.............................
삥순이!
험한 세상 남매들 키우며 힘들게 살아가고 있을 그대
그 아픔, 그 상처 어지간히 아물었는지..
우연이라도 한 번쯤 만나 어디 조용한디서 지나온 얘기 할 수 있는 날은 읎을런지..
.
.
.
저 그날 목심 걸어놓구 술만 엄청 마셔댔어유
조강
'미호천에서 부르는 노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돼지고기와 묵은 김치가 만났을 때 (0) | 2019.12.23 |
---|---|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저는 조치원역에 차를 주차시켜 놓고 김천에서 올라오는 통근열차를 이용하여 출근합니다. (0) | 2019.12.23 |
몰래한 사랑 (0) | 2019.12.23 |
촌놈의 포도주 마시기 (0) | 2019.12.23 |
쇠똥 밟구서...... (0) | 2019.1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