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호천에서 부르는 노래

촌놈의 포도주 마시기

조강옹 2019. 12. 23. 17:29

 

 지가 작년 삼월부터 직장 근무를 일근으로 전환한 이후로 기울어져가는 가세를 바루잡구 가정경제를 재건하자는 기치아래 조신하게 집안에서 살림이나 해야 할 내자 마저도 산업전선에 나서다 보니께 먹을거리 장만하는 이른바 장보기 사업은 대게가 반굉일날이나 굉일날 부러 시간을 내서 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어유

 

 이 장보기 사업은 정확히 표현을 하자문 즈덜 내외의 공동사업이 아니라 내자가 하는 사업에 지가 수행을 한다구 해야 정확한 표현이 되겄네유

첨엔 그래두 모처럼 시내 나가는거니께 기분이 들떠 웃으문서 가튼가 하는 수레 밀구 쫒아댕기지만 좀 있다 보문 다리두 아프구 짜증두 나게 되는 것이 말유

 

 대형마트란 것이 대게가 좋은 상품 포장두 기가 막히게 깔끔하게  해 놨는디 이것 저것 뒤집어보구 재켜보구 살듯하다 도루 놓구 딴디루 가구..  그러다 한참이나 지나서 도루 그곳에 가서 또 뒤적이구.. 이쯤되문 속에서 부아까지 슬슬 치밀어 올르지유. 그리타구 뭐라구 한마디 하문 집으로 가는 내내 피곤하다는 것을 지난 과거 경험을 통해서 체험을 한것이고 보니 잊을 수가 읎지유  조심 조심 눈치봐가문서  자동차용품 파는디나 술병 진열해 놓은디 가서 그거 구경하는 것이 질루 나은 방법이란 것이 그동안 지가 터득한 요령이라문 요령이지유

 

 자동차 용품두 좋은거, 기발한거 참 많은디 하나 살라 그라다가 지가 끌구 댕기는 자동차가 사람으루 치문  낼모리 미수(헉~ 이거 지 수준에선 엄청 어려운 문잡니다.)를 바라보는 연세다 보니께 늙은이 화장하는거 멘치루 어울리지 않겄다 싶어 집었다 놓구  그러다가 자리를 옮겨서 술병 진열해 놓은 곳으로 가문 이런 생각은 한번씩 꼭 하지유.

 

  요놈의 술 죄다 쓸어갖구 가서 친한 친구덜 불러 모아놓구 날잡어 마시문 메칠동안이나 마실라나?  크큭...  밤새도록 노나 마셔두 이튿날 그짓말같이 속이 멀쩡할 저 양주,  고거 한 병 집어 넣으문 얼마나 좋겄나만 고등핵교 댕기는 아들 둘 지대루 갈치지두 못하는 주제에 언감생심 그냥 바라보문서 침만 꼴딱 꼴딱 삼기다가 그려, 요런 궁핍이 좀 불편하다 싶은 것이 사람사는겨 하구서는 가트를 밀구서 '우로봐' 하문서 가다가  끄트머리께 구석팅이에 진열된 포도주가 눈에 들어왔다는거지유

 

 여기서 잠깐 각을 설해야 되겄어유

아주 오래된 얘긴디유 지가 언젠가 한번 저기 서해안 어디껜디 바닷가 레스토랑에서 폼잡느라 포도주 한잔 시켜먹은 적이 있어유. 그거 잔으로 파는 거 비싸 봤자다 하는 생각으로 잘 먹고 잘 마시구 나오는디  놀래라 정확한 액수는 기억에 읎지만 좌당간 생각보덤  엄청나게 비싼 돈 물구나서  두고 두고 속이 쓰려 혼났던 적이 있어유


 그런 이유루다가 해서 매번 건성으로 지나쳤던 그 자리에 자시 디려다 보니께 비싼 것은 여전히 비싸지만 싼 것은 욕심내두 될만한 가격이더라는 말씀이지유

알파벳 비스무리한 글잔디 지가 쉬 읽을 수 읎는 것이 불란서제가 분명코..

두리번 거리다 침두 몇 번 생키다가  질루 싼거 한병 집어갖구 슬그머니 가트 밑에다가 감춰갖구 어찌 어찌 나와서 싱크대 밑에다가 감추어 두었어유

그리키 하구서는 까마득히 잊어뻔지구 있었는디 어느날 저녁상에 낙지전골이 올라왔는디 실력인지 실순지 몰러두 좌당간 맛이 기가 막히더라구유

오죽했으문 즈희 엄니께서두  '요번거는 간이 지대루 맞었다' 그러시더라구유

이거 무지무지한 호평이유 극찬중에서두 상극찬이지유

 

 그러다 보니 저는 생각두 못했는디 엄니께서 '어이 아범,  한잔 안하실라나?' 하시는거유.  그래서 문득 싱크대 밑에 숨겨놨던 포도주 생각이 나서 '엄니 지가 아주 좋은 술 한잔 디릴께유' 하구서는 그거 갖구 나와 주둥이 씌워놓은 껍질 벗기고 보니게  콜크마개루다가 막어 놓았더라구유

생각지두 않은 난관에 봉착하구 보니께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그걸 열 재간이 있어야지유


 젓가락 끄트머리루다가 후벼파려구 해보니께 어림반푼어치구유 송곳을 갖다가 낑낑거리다 보니께 안됐다 싶었던지 아내가 부엌에 가서 과도를 갖다 주더라구유. 과도 끝으로 후벼 파듯 파 봐두 워낙 안으루 깊숙이 박아놓는거다 보니 재간이 읎더라구유

 

 온 가족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쳐다보구 저는 이 난국을 딱히 헤쳐나갈 방법이 읎다 보니께 등허리에서 식은땀이 날 지경이구  참 난감하더란 말씀이지유

무너진 하늘에 솟아날 구멍이 읎다문 어띠키  속담이 생겨났겄어유?

전광석화같이 이 둔한 머리에 문득 나사못 하나 박어서 펜치로 잡아빼문 되겄다는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유.  연장통을 열구 가장 긴 나사못을 하나 끄내서 드라이버루 돌려 박기 시작했어유


 가족들은 숨을 죽이구 저것이 가능할까 침을 꼴깍 생키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구 밥상위에  낙지 전골 끓는 소리가 시간이 갈수록 크게 들려왔지유

이쯤이면 되겄다 싶을 때 펜지로 나사못 대가리를 물고 지긋이 힘을 주어 뽑아 올렸어유

 

 '퐁' 소리와 함께 콜크마개는 열렸고 가족들은 모두 탄성을 자아냈지유.

크큿, 가장의 위기관리 능력 내지는 기똥찬 아이디어,  임기응변에 가이없는 존경으 염이 담긴 눈길을 보내왔고 저는 으젓하게 어깨다가 심을 주구 지각기 한잔씩 따르구 '위하여'를 했어유.

촌놈의 포도주 마시기는 이리키 어렵사리 성공을 거두었어유

 

 지멘치루 시골사는 분덜  !!

지레 겁먹지 마시구 혹 마트 가실일 있걸랑 포도주 한병 사다가 드셔보세유  그런대루 새콤 달콤한 맛이 질나다 보문 쓴 소주보다 반주로다가는 훨씬 나을티니께유.

근디 아무리 싼 포도주라두 소주보담은 훨씬 비싸니께 자주 드시문 본전생각 나실걸유?

 

그리니께 드시기 전에  다 같이

 

'피 한 방울 술 한 방울 안주는 내 몸같이,   위하여!!'


조강. 

 

2002년6월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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