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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세번째 이야기

조강옹 2019. 12. 25. 06:05

시골에 살다보면 꽃을 통해서 봄이 왔음을 느낍니다.

개나리가 피기 시작하면 세상에 개나리를 이리 많이 심었나 생각이 들고

복숭아꽃이 피기 시작하면 언제 누가 복숭아 나무를 이리 많이 심어놨을까 놀라기도 합니다.

 

어제 오늘 부산은 온통 벚꽃 천지입니다.

꽃이라 이름지어진 것들은 나름 모두 아름답지만 화사하기로는 벚꽃을 따를 꽃이 없을것 같습니다.

치어다 본 부산의 하늘은 온통 벚꽃으로 수를  놓은 듯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엊저녁에 처형은 가거도로 놀러 가자고 하였으나  부산으로 놀러온 사람들로 하여금 부산에서 놀게 해달라는 이 조강의 간청을 받아들여 우리를 어디론가 데리고 갑니다.

나무 사이로 힐끗 보이는 곳

어디냐고 물었더니 신선대 부두라고 합니다.

멀리 산과 아파트먼트와 쌓아 놓은 콘테이너가 눈에 크게 거슬리지 않는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뒤에 알았습니다만 우리가 가는 곳은 문체부가 해파랑길이라 이름하여 오륙도에서 시작하는 688킬로미터의 동해안 탐방로 끝 부분 시오리를 걷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즉 이곳에서 부터 바닷가 올렛길을 시오리 가량 걸어 오륙도에 도착하는 코스였습니다.

 

 

쇠와 쇳물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결에 언뜻 녹슨 쇳내가 실려오는 듯

아마도 철길위에서 근 삼십오년 살아온 직업병(?)아니겠나 잠시 생각했습니다.

 

일전 제주도 여행에서 아쉬웠던 부분중의 하나가 바닷가로 난  저런 길을 걷지 못하였던것인데 이곳에서 그 아쉬움을 달랠수 있다는 생각에 참 즐거웠습니다. 

한참을 걷다가 뒤돌아 보아도 늘 거기에 걸쳐 있는 다리 -  광안대교라 했습니다.

인간이 "개발" 혹은 "건설"이란 이유로 자연을 훼손하고 맹근것 중에 그나마 괜찮다 생각이 드는것이 아마도 다리가 아니겠나? 

뒤돌아 볼적 마다 저런 모습으로 바다위에 걸쳐 있었습니다. 

 

 

중간 중간 이렇게 낚시꾼들의 모습이 눈에 띕니다.

문득 생각이  물고기로서의 생도 참 고달플수 밖에 없겠고나

먹이가 눈에 띈다고 자칫 성급히 물었다가 졸지에 물밖으로 불려나와 그 넉넉잖은 생 마저에 

조기에 마감해야하는 처지,  

게다가 물밖에 살면서 가끔씩 "물질"이란 이름으로 물속으로 들어와 불문곡직 건져내는 "해녀"들의 눈에 띄기라도 하면 영장실질심사없이 바로 구속이요

이후 도마위에 올려져 .......... 이래저래 사람 몸 빌어 세상에 나온것이 참 행복한 아침입니다.

 

가던 길 멈추고 부녀가 들여다 보고 있는 것은 뭘까?

들여다 보니 그곳에 적혀있기를 임진난 당시 수영성을 함락한 왜장이 경치좋은 이곳에서 기녀들과 승전을 자축하며 술을 마시다가  기녀 두 사람이 술취한 왜장을 끌어안고 바다에 빠져 죽었다.

두 기생이 묻혔다하여 "이기대"라한다.

............

 

아주 오래전부터 나라지키기에는 남녀 구분이 없었는데  왜 파란 기와집 근처에서 얼쩡거리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군대를 다녀오지 못했는지,  그리고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기도  하지만 스스로 그렇지 아니한 자는 그러하지 아니한것이 아닌가?

작금의 일본 지진을 바라보면서 아주 오래전 저들의 조상이 저지른 죄값을 후손들이 분할상환하는것은 아닌가?

 

우리, 후일  국운이 융성하다하더라도 이웃나라를 침범하지 말것이며 혹여 침범하였다 하더라도 바닷가에서 술마시지마라!  뒤따라 오는 조카에게 단디 일러놓고 앞으로 전진!! 

 

칠십년대 유뮬이 되어 버린 초소

딸은 높이 올라 멀리 내려다 보면서 아부지한테 이게 무어냐고 물어볼것입니다.

짧은 시간 즉답을 해야할터인데 무어라 설명했는지 금새 내려와 대열에 합류합니다.

 

바닷가 따라 나거나 낸 길이 스스로 굽었다 펴지기도 하고 펴졌다가 도로 굽어지기도 하고 굳이 내려다 보지 않아도 발이 스스로 알아서 딛고 나갑니다..

 

 

 

뒤에서 귀에 익은 비명소리가 들려오고 일행이 우 몰려갔습니다.

경치에 취해 앞을 보지 않고 걷던 안해가 계단 모서리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바지를 입었는데도 불구하고 날카로운 돌부리에 찧여 절상을 입었습니다.

피가 철철 나는것이 상처가 예사롭지 않아보입니다.

 

걷는것이 싫다며 집에 남아있던 손윗동서가 자율119가 되어 불려나왔고 가까운 약국으로 후송 조치하였습니다.

흉허물 없는 처남매부지간 형제자매간 함께  걷는  이길이 "마누라" 없이 걷자니 다리에 힘이 빠집니다.  나이들수록 남자는 여자의 그늘밑에서 사는거라던 안해의 말이 가심팍에 와 닿습니다.

 

이쯤에서 잠시 쉬어가겠습니다.

 

물론  투비콘티늅니다. 

 

조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