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내 기억의 저장소엔 아주 빛 바랜 그림 하나, 먼지 소복히 쌓인 채 남아있다.
아주 오래 전
저 포크레인 서 있는 자리
낡고 허름한 초가집 한 채 서 있었다.
턱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르신 종조부께서 종조모님 더불어
무르팍 아래 다섯 남매 거느리고 지지리 가난하게 사셨던
그리고 그 허름함과 궁핍이 종조부의 턱수염 만큼이나 멋지고 웬지 친근감까지 느껴져
지금으로 부터 사반세기전, 특별조치법이란 이름으로 재산을 정리할 적
나는 감추는 심정으로 저 팔십 일평의 밭뙈기를 내 명의로 돌려 놓는데 성공하였던 것이다.
사반세기 전이라함은
오랜 객지생활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온지 다섯해째 되던 때로
경운기 몰고와 쟁기꾸려 이 산밭을 갈아엎고 고랑타서 고추며 참깨며
격일제 근무임에도 불구하고 틈틈히 비료도 주고 소독도 해가며 부쳐먹던 시절이었으며
논 아홉마지기 농사와 더불어 부업삼아 하던 억척은
땅에 대한 애착도 근면도 아닌 그저 밭이 거기 있었으므로 하던 일상의 행위였다
이후 생의 근거지를 서북방으로 이십오리 이전한 이후
인근 지인에게 걍 부쳐 먹으라 내 맡기고 방치하다 시피하다가
어느날 문득
사십여년 철길에 발 걸치고 밥빌어 먹는 시한이 저만치 다가옴에 따라
저 소나무 밑에 이전의 그 빛바랜 그림에 채색작업을 시작하리라!
"명년 봄 부털랑 내 손수 일굴테니 밭에서 손떼라"
걍 부쳐먹던 사람에게 이르기에 이르렀다.
그러고나서야 딱히 할 일도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뱉은 말 거둘어 들일 수 없는 일이고 해서
어느 이른 봄날
포크레인 수소문해서 한 나절 거금 이십 삼만원을 들여 정지작업에 들어갔던 것이다.
그랬다.
때가 되면 죽은듯 뻗어있는 가지에도 새순 돋아나듯
겨드랑이 게려워 오면서 호미내어 밭고랑 따라 걷고 싶어지는게
개나리 잎이 나기 시작하는 요맘때 쯤 아니였던가?
"일하러 가는게 아니라 소풍가는 것이다!"
내외간 비닐 챙켜 서툰 솜씨로 비닐을 덮고 이웃에서 얻어온 파뿌리카, 양배추, 삼채 등을 심었다.
둔덕에 심으라 호박모 까지 열 모 챙겨온 이웃에게 연신 고맙다하며
우린 작심하고 온 한 나절의 중노동을 우리의 이웃은 지나는 길에 잠깐 거들어 주듯
아주 쉽게 비닐을 덮고 심는 요령을 가르쳐 주고 집에 손님든다하며 서둘러 갔다.
작은 집에서 얻어온 강남콩
내일 모레쯤 전국적으로 비온다는 일기예보 반기며
고랑따라 콕 콕 질러 넣으면서
이 마르고 딱딱하기 그지없는 콩알 하나 땅에 묻음으로 해서
훗날 뿌리내리고 꽃피고 열매 맺어 열 배 스무 배의 수확을 약속하고 약속받는
이 경건하고 거룩하기까지한 약속과 믿음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라 달리 이를 수 있겠는가?
하여, 이 봄날 한 나절의 노동끝에 밭머리에 라면끓여 밥 말아먹는 점심에 앞서
우린 아주 진실되고 엄숙한 마음으로 잠시 잠깐 감사의 기도를 올렸던 것이다.
2015년 어느 봄날
팔십 일평의 산밭에서의 기적은 이렇게 약속되었던 것이다.
주경야근 조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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