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호천에서 부르는 노래

2011년 덕촌가요제

조강옹 2019. 12. 25. 06:18

저렇게 환한 조명을 받으며 무대에 오른다는 것.

반시간 전에 서로 인사한 관계자들과 손을 맞추어 행사를 진행한다는 것.

남이 보기엔 영광으로 보일수도 있겠지만 정작 당사자에겐 부담스런 일이기도 하다.

 

해마다 추석이 다가오면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연어가 돌아오듯 제 살던 곳으로 찾아들고

아내를 앞세우고 인사차 처가를 방문하는것도 이미 신풍속이라기엔 거듭된 해가 너무 많다.

 

 

언제부터 시작인지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덕촌가요제

시작은 일곱시라 했지만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듯 해가 지고 어둑해서야 하나 둘 모인다.

언제나 말 잘듣는 어린이들이 저렇게 다소곳이 줄지어 앉고...

부녀회에서 천막치고 술과 찌짐이라 부르기도 하는 빈대떡을 마련해 놓은지라

여차하면 자리옮겨 막걸리 마실 꾼들은 저렇게 어중간하게 서 있기도 한다.

 

대략 한 시간에 한 대꼴로 청주 시내를 오가는 시내버스 종점이기도 하지만

난 오늘 만큼은 박박 우겨서 덕촌광장이라 부른다.

가라 앉은 분위기 끌어올려 마치 잘 안걸리는 자동차 시동걸듯

몇번이고 따라하라 사정해 가면서 "안녕하세요"라 외쳐 보기도 하고

되지도 않을 소리로 웃겨보 본다.

 

 

마을 주민들이 대체로 수긍할 만한 학교에서 분필장수 하는 사람

전임 부녀회장, 덕촌유치원 원장 등등을 심사위원으로 모셔도 놓고

 

노래방 기기에 전자올갠 하나 가지고 온 악단에게도

BB밴드라 그럴듯하게 소개도 하는데  때 맞춰 빵빠레도 울려주고

비눗방울도 무대위로 불어넣어주어가 가면서 할것은 제대로 디 해낸다.

 

한편으로 주최측에서 노래 부를 사람들 신청을 받기도 하고

뜻있는 사람들의 찬조도 마다않고 받아들인다.

 

 

경우에 따라서는 저렇게 백댄서를 대동하고 오르는 사람도 있고

이모나 고모쯤 되는 친척들이 응원을 하기도 한다.

이웃마을 갈비집 사장님이신데

우리 덕촌 주민들에 한해서 이용객에게 일주일간만 10% 할인해 달라했더니

사흘간 무료로 제공해 주신다한다.   그 사흘간은 문닫는다 하는 조건을 붙임으로 해서

일찌감치 입상자 후보군에서 멀어져갔다.  흐흐

 

 

천사같은 미모에 혼자 올라와 당차게 노래 부른 어린이

이름도 예쁘게 예린이라 했다.

 

중간쯤 초대가수도 나온다.

단주란 이름의 이 여가수는 덕촌에 아무 연고없이 아무 생각없이 밴드 따라왔단다.

출연자는 접수시에 일만원의 수수료를 내고 일절만 부르도록 되어 있지만

초대가수는 이절까지 부르고 약속이나 한듯 앵콜을 외치면

두말 않고 또 한곡 불러준다.

저렇게 단상으로 내려가 주민들과 어우러지면서....

 

졸린 아이게게 달리 자장가가 필요하겠나

다만 불편한 잠자리를 걱정하는 엄마의 표정이 성모마리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않다.

처음부터 무대 앞을 어슬렁거리기에 경품으로 휴지 한통 주었더니

엄마가 떠 민건지 아이가 알아서 그러는지 무대앞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틈틈히 휴지를  추첨해서 나누어 주다 중반쯤에 자전거 하나 풀었다.

걸어왔다 타고가는 행운을  얻은 사람치고 표정이 대단히 겸손하다.

 

결혼한지 얼마됐냐고 물었더니 고등학교 2학년이라 했다.

사람보고 나이 가늠하기 참 어려운데 관중석에서는 유머어로 새겨듣고 박장대소한다. 

 

눈물찍어내도록 구슬픈 노래 부르고도 대상이고 장려상이고 필요없으니

휴지나 한 통 달라 사정해서 그렇게 해드렸다.

욕심비운 편안한 표정   덕촌으로 시집와서 반세기를 넘게 사셨으니 가능한 일이려니..

 

내일 모레가 팔십이라신다.

이렇게 칠십 여덟 드신 할머니 두 분이 무대에 오르셨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 가끔 올라오면 인터뷰하기도 쉽지 않은데 때론 긴장풀자고

구령부쳐가면서 숨쉬기 운동 같이 하기도 하고 하이파이브로 격려도 해주고...

 

장터 발전위원회 위원장 또는 동네 신협 이사장 다음 재기를 노리는 전직 정무부지사

이런 분들 가끔식 올라와 인사도 하기도 하고 시상을 도와주기도 한다.

 

기록에 남기기 위해 아해에게 사진촬영을 부탁했는데  여기까지 찍다 뒷냇가로

밤낚시 하러 떠났다 했다.

 

대게 그러하듯  입상한 사람들 불러세워놓고 미스코리아 진선미 발표하듯 적당히

뜸도 들이고 웃기기도 하면서 최종 대상까지 시상식을 마쳤다.

 

시상식 끝내고 추첨하기로 한 자전거 경품이 대부분의 주민들로 하여금 끝까지 자리를

지키게했고 사람들은 하나 둘 자리털고 일어나 집으로 향한다.

 

 

이 가요제를 주관한 덕사모(덕촌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회원들과  빈대떡 장사로

재미를 본 부녀회원들이 사회자와 서로 악수하려 벌떼같이 몰려 들었고 두어 시간 진행하는

동안 무대 뒤로 찾아와 존경한다며 한수 가르침을 청하는 후배도 있었다.

 

"이런건 배운다고 되는게 아녀, 타고 나는거지!!"

 

실망 가득한 눈빛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돌리던 웃동네 후배 녀석은 어느새

술이 떡이되어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