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호천에서 부르는 노래

다소 긴 안부

조강옹 2019. 12. 24. 08:33

2009년 섣달그믐

쉰 두 살에서 쉰 세 살로 넘어가는 세월의 고갯마루

그 소중한 하루 햇살이 거실의 반까지 밀고 들어오는 오전 소파에 앉아 이 글을 씁니다.

멀리 중부고속도로 오가는 차량행렬이 보이고 미호평야와 청주시 외곽의 한 부분이 내려다보이는 곳 늘상 닫혀있는 유리창 덕분에 소리 없는 풍경은 참 조용하고 평화롭고 아름다워보입니다.

이렇게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상에서 사는 나는 참 행복하다 하는 생각을 문득 해봅니다.

이 추운 겨울 창유리로 걸러진 따뜻한 햇살 받으며 거실 소파에 편안히 등기대고 앉아 지나온 세월 뒤돌아 볼 수 있는 현실이 우선 그렇습니다.

아내는 적당히 힘들고 짜증나고 그만큼 나름 보람도 느끼는 직장에 아침 일찍 출근했습니다. 근 이십여 년 사구체 신염이란 떼지 못하는 병을 안고 살고 있지만 살얼음 딛고 걸어가는 것도 그 조심의 정도가 덜해지는 것이 걸어가는 걸음걸음 위태로워 보이지만 깨지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이 더해지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머리감고 세수하고 화장하면 그런대로 나이보다는 젊어 보이고 아름다워보이기 까지 합니다.

가끔씩 나를 이기려 무력도 불사하며 맞서긴 하지만 그거야 체내 호르몬 분비와 관련된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라 이해하니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다. 스스로 고백하듯이 가끔은 남 보다 시집 잘 와서 그냥 저냥 산다고 만족해 하는 듯하니 그냥 요대로 쭉 갔으면 좋겠습니다.

며칠 전 팔십 한 번째 생신을 맞이하신 노모께서는 퇴행성관절염으로 걸음이 불편하신것 외에는 어려움이 없어 보입니다.

한결같은 식성으로 식사 잘하시고 필요하면 간단한 요리 직접 하셔서 아들 밥상 차리시는걸 보람으로 여기시는 듯합니다.

늘상 하시는 말씀대로 따뜻한 저녁진지 잘 잡숫고 주무시듯 산으로 가시기를 소원하시지만 제게는 아직 소중하신 어머니이시고 그러므로 한동안 이 세상 오래 오래 제 옆에 계시기를 저 또한 소원합니다.

큰아이는 두 번째 임용고시에 실패했습니다.

결과만 놓고 보면 두 번째 실패지만 작년보다 성적은 훨씬 좋아서 커트라인에 근접했다하니 내년에는 더 치고 올라가 합격권에 들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차분하게 묵묵히 한 우물 파는 모습 지켜보고 있노라면 안쓰러움보다는 믿음이 더 갑니다. 지켜보는 것 자체도 보람이려니 생각하겠습니다.

작은 아들은 고심 끝에 일년 남은 대학 생활 휴학계내고 필리핀으로 언어연수를 떠난다 합니다. 나름 여러 가지 안을 놓고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라 하니 존중해주기로 하였습니다. 제 형보다 상대적으로 씀씀이도 더 크고 은근한 고집도 있고 막내이다 보니 지켜보기가 덜 믿음직스러워야 하는데 이상하게 맘이 편합니다. 주위사람을 안심케하는 타고난 능력이려니 생각합니다. 내년 일 년 눈에 띄게 달라지리라 기대해보겠습니다.

가까이 지내는 친구가 이번에 명퇴를 한다는 소식을 방금 전 통화로 들었습니다. 내가 다니는 회사보다 더 먼저 공사로 바뀌었고 민영화되었으니 나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고 다녔을 터인데 많이 아쉽고 남의 이야기 같지 않게 들립니다. 동병상련이기 때문이지요.

우리 회사보다 여러모로 형편이 나은 그 회사가 이러하니 친구 얘기가 곧 내 얘기일수밖에 없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지요

그래도 긴장해가면서 아등바등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저 미호천 틈나는 대로 낚싯대 드리우고 붕어와 씨름도 하고 속리산 자락 봉우리 봉우리 가쁜 숨 몰아쉬며 발자국 새겨가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겠습니다.

나를 좋아하는, 내가 좋아하는 이웃들과 때로는 궁색하리 만치 때로는 정승같이 밥도 같이 먹고 술도 같이 마시면서 내 얘기 그들의 얘기 듣고 들려주며 살고 싶습니다.

나이 한 살 더 한다는 것

이제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느냐

목표를 어디에다 두고 어떻게 숨 가쁘게 달려갈 것이냐

이렇게 살지 않겠습니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것에 감사하고 비가 오지 않으면 비가 오지 않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고개들어 위를 보고 부러워하기보다는 내려다 보며 불우한 이웃에 대한 연민으로 바람 불면 흔들리고 비오면 젖고 밟으면 밟히겠지만 슬그머니 추스르고 다시 일어서는 그런 삶을 살겠습니다.

그래도 월급날 마다 통장에 돈 들어 올 때까지는 다소 무리하더라도 중국도 더 다녀오고 동해로 서해로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 다소 부지런히 쫒아 다니며 찾아다니며 그렇게 살겠습니다.

내 여기까지 온 것에 감사하며 쭈욱 더 갈수 있는것에 감사하며 늘 함께하는 가족들과 서로를 의지삼어 온 모든 지인들에게 감사하며 무엇보다도 이 추운 겨울 거실에 앉아있는 내 무르팍까지 찾아 준 따사로운 햇살과 이른 저녁 챙겨먹고 나가야할 일터가 있음에 감사하며 .....

..............

이 모두를 사랑하겠습니다.

 

쉰 두 살되는 해 그믐날 오전

 

오창 자택에서 조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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