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나와서 부르는 노래 178

제주도에서 한 달(3)- 내려다 보기 위해 오른 송악산

자전거 타고 송악산으로 가는 길은 봄에 산방산 쪽으로 내려오던 길을 더듬어 올라가는 길이다. 길도 거슬러 올라가고 시간도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보지 못했던 사람들과 풍경들과 사람들이 보인다. 그럼에도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보다 뒤돌아본 풍경이 더욱 아름답다. 그래서 자전거 세우고 카메라 꺼내들기 일쑤다. 이후 서쪽으로 걸을 때마다 불끈 솟아오르듯 봉긋한 송악산은 한라산과 더불어 어디서든 눈에 들어왔다. 저 밑 정자에 자전거를 놓고 송악산을 오른다. "제주에는 도둑이 없습니다." 안덕 창천에서 하룻밤 묵기로 하고 자전거를 어찌할까 안절부절못하는 내게 안주인은 웃으면서 말했었다. "혹여 누가 집어가지나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되돌아보면서 자전거의 안녕을 확인한다. 늙은 탓이다. 송악산 전망대 오..

제주에서 한 달(2)- 산방산에서 쓰는 편지

하늘에 무지개 바라보면 내 가슴은 뛰노나니, 나 어려서 그러하였고 어른 된 지금도 그러하거늘 나 늙어서도 그러할지어다. 아니면 이제라도 나의 목숨 거둬 가소서. ​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원(願)하노니 내 생애의 하루하루가 천생의 경건한 마음으로 이어질진저……. ​ - 윌리엄 워즈워드 - 아침 우유를 사러 나왔다가 무지개를 보았다. 내용 중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란 말이 화두처럼 내 안에 오랫동안 머물렀는데 무지개를 본 아침에 가슴이 뛰지 않으면 목숨을 거두어 가달란 기도 같은 말에 노년임에도 아직 가슴이 뛰는 나는 목숨을 부지할 자격이 있다는 생각에 안심하고 뿌듯하기 까지 했다. 같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오늘 아침 나는 무지개를 보았고 내 가슴은 뛰었다네. 바라옵나니 오늘 하루가 천생의 경건한 마음으..

제주에서 한 달-걷기 위해 날아가다.

"나 제주에 다녀오면 안 될까"" 느닷없는 내 물음에 "그렇게 하슈!" 아내는 아주 쉽게 허락(?)했다. 어차피 말려도 듣지 않을 것을 알기때문이라 했다. 그렇게 제주에 왔다. 지난 9월 29일이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싸고 좋은 것은 없다지만 가난한 백수에게 저렴하면서도 썩 괜찮은 숙소가 좋은 인연으로 내게 연결되었다. 올 사월이었다. 자전거로 제주를 한 바퀴 돌아보기로 작정하고 섬에 왔었다. "샵"에서 빌린 자전거로 2박 3일 240여km를 씩씩하게 돌았다. 둘쨋날 남원쯤이었을 게다. 스쳐지나가는 풍경이 괜찮다싶어 자전거를 멈추고 지나쳐 온 풍경에 카메라를 들이댔는데 뷰파인더에 배낭매고 걸어오는 거한이 눈에 띄었다. 셔터를 누르고 가던 길 가기에는 그 "거한"이 내게 너무 가까이 다가..

제주- 그 그리움에 대하여

안녕 제주! 나는 내일 뭍으로 간다, 가서는 바람 따라 파도가 하얗게 거품 물며 아무리 “때리고 부수고 무너뜨려도” “임처럼 꿈쩍도 않던” 현무암처럼 까맣게 잊고 살다가 불현듯 아직도 거기 바람부는지 감자꽃 하얗게 핀 밭고랑 따라 김 매던 할망들 옷 걸린 밭둑에 혼자 서 있던 나무 더불어 그대로 강녕하신지 “임처럼 꿈쩍도 않던” 현무암처럼 까맣게 잊고 살다가 다 올라선 영실 오르막 고사목 되어 장승처럼 서 있던 구상나무 아직 거기 그대로 벗은 채로 서 있는지 “임처럼 꿈쩍도 않던” 현무암처럼 까맣게 잊고 살다가 월령삼거리 버스 세워 오르던 저지오름 묘지 돌담에 노랗게 피어나던 키 작은 그 꽃, 아직도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지 바람 따라 파도가 하얗게 거품 물며 아무리 “때리고 부수고 무너뜨려도” “임처럼 ..

길위에서 쓴 편지 - 증도 태평염전

돌아보면 아득한 것이 산 정상에 올라 올라온 길 내려다 보는 것만이 아니다. 산고에 이맛살 찌푸리던 아내의 모습과 배냇저고리 사오라는 간호사의 말에 병원 앞 시장통을 뛰어다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아스라이 먼 지난일이 되어버렸다. 이후 가이없는 희생으로 키워낸 아들이 세상에 나온 날을 기억하여 미역국을 끓이고 나름 성찬을 마련하는 것도 아직까지는 어머니의 몫이다. 그리고 자식에 대한 "희생"은 현재 진행형이고 가이없기는 마찬가지다. 자식을 위하는 어버이의 마음에 어디 족함이 있으랴! 늘 부족했고 그래서 미안하고 안쓰러웠음에도 아이들은 잘 자라주었다. 그리고 특별한 가족력 없이 건강한 몸으로 세상에 내보내주신 것만으로 부모님께 감사하다는 저들끼리 주고받는 말에 처복 많은 내게 자식복 또한 적잖다는 생..

자전거로 제주 한 바퀴(최종)

. 이른 아침 함덕쪽으로 가는 길은 조용하고 아름다웠다.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바람은 약하지만 뒤에서 불었다. 누구는 삼대가 덕을 쌓은 모양이라 하고 누구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보다 하였다. . 저 낯익은 언덕길 저 낯익은 풍경 마치 고향에 온 듯 반가웠다. 일전 제주에의 한 달을 내내 이 부근에서 머물렀던 터라 자주 찾던 곳 이른 아침임에도 새벽잠 없는 엄마와 아이가 텐트밖에 나와있었다. 남은 거리 대략 25km다. 이쯤이면 기어선들 못 가랴! 역풍인들 못 가랴! 김녕을 출발할 때부터 아킬레스컨의 통증이 남아있어 걱정했는데 몸마저 건방이 들었던지 각 부위에서 올라오는 통증은 견딜만했다. . 고개를 돌리거나 길이 방향이 바뀌어 눈에 들어오는 아침 풍경은 이내 자전거를 멈춰 세웠다. 시간이 넉넉했으므로..

자전거로 제주 한 바퀴(2)

. 간밤 잘 잤다. 엊저녁 숙소에 들기까지 아주 신속하도 효율적인 협상을 통해 성공리에 흥정이 끝나자 자전거는 1층 홀 안에 두면 된다고 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음에도 커다란 눈망울에 총기 넘기는 안주인은 자물쇠를 채우려 번호키를 주물럭거리는 내게 "제주에는 도둑이 없습니다." 머쓱해진 나는 묻지도 않음에도 내일 아침 날이 밝는 대로 떠나겠다고 말하면서 3층 숙소로 올라왔다. 이튿날 아침 과연 자전거는 그대로 있었고 문은 열려있었다. 도망치듯 숙소를 빠져나와 어제 보아둔 작은 가게에서 김밥 한 줄을 사서 거지처럼 서서 먹었다. 영화 기생충의 "지하실의 여자"와 닮은 인상의 쥔아주머니는 잠시잠깐의 내 얘기를 듣더니 그 나이에 대단하다며 놀멍쉬 멍 잘 다녀가시라 큰누님 같이 인사를 했다. 그 표정과 말속..

자전거로 제주 한 바퀴(1)

가끔씩 하늘을 올려다보면 남쪽으로 나는 비행기가 눈에 띄었다. 15층 아파트 거실에서도 그랬고 아침 동네 앞 태실공원을 오가는 산책길에서, 미호천 자전거 도로에서 그랬다. 그러면서 문득 두고 온 땅- 제주가 생각났다. 따지고 보면 거지반 두 해가 다 되어간다. 퇴직 직후 큰 맘 먹고 저질렀던 "제주 한달 살이"를 끝내고 돌아올적 "내 뭍에 좀 다녀오마!" 제주사람 다 된 것처럼 그렇게 두고 온 땅 - 제주에 대한 그리움이 물밀듯이 밀려온 것이다. 자전거 타고 한 사흘이면 한 바퀴 둘러볼 수 있다했다. 비행기 삯은 믿기지 않을 만큼 저렴했으며 자전거 대여료는 직접 가져가는 가는데서 오는 불편과 경비가 대여하여 이용하 는 것이 보다 편리하고 경제적이라 판단 할 수밖에 없는 선에서 가격이 책정되어 있었다. 이..

계룡산- 십 일월 마지막 날

2020년 11월 30일 정오쯤 동학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한 시간 반 남짓 거리다. 하늘에서 우박 떨어지듯 작게는 호박만 하고 더러는 절구통 만한 돌덩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길 오랜 세월 - 오가는 사람들에 의해서 어떤 것은 디딤돌로 놓아지고 또 어떤 것은 걸림돌은 걸러지고 해서 난 길 따라 올라오면 남매탑에 다다른다. 전해져 오기를 신라시대 상원조사가 이곳에서 도 닦고 있으매 하루는 호랑이가 울부짖어 살펴보니 입안에 가시가 걸려있어 뽑아주었단다. 대개의 전설이 그러하듯 훗날 호랑이가 아리따운 처녀 하나 등에 업고 데려왔다 하고 사연 많은 그 처자 의남매를 맺고 수도에 힘쓰다가 한날한시에 입적했다는 애달픈 사연이다. 제자가 화장하여 사리를 수습한 다음 탑을 건립하여 남매탑이라 명명했다는 탑 두 개..

속리산의 가을

. 충청북도 "쪽수"로 따지자면 일개 광역시만도 못한 일백육십만 도민 한반도 남쪽, 반도의 가운데 어미뱃속에서 자라나는 태아 모양으로 잔뜩 웅크린 형상의 좁은 땅에서 옹기종기 모여 삽니다. 속리산은 그 발목 부분에 자리한 명산으로 충북인의 자부심이기도 합니다. 명산대찰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이름난 산엔 큰 절이 있습니다. 속리산도 예외는 아니어서 법주사란 대찰 하나 있습니다. 산이 좋아 산에 온 사람들일지라도 이곳이 모두 절 땅이니 구경하는 값을 치러야한다는 안내판 하나 구석에 세워놓고 입구에서 턱하니 저렇게 돈을 거둡니다. 얼마 전 이곳 승려들이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큰 판돈 규모로 노름을 한다는 사실과 그것을 제보한 사람이 같이 노름을 했던 승려이고 발고하고 나서 자취를 감췄다는 내용에 비추어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