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나와서 부르는 노래 178

길위에서 쓰는 편지- 진도 가는 길

아직도 눈에 어른거리는 소금밭을 뒤로하고 진도로 가는 길 창밖 풍경 한 컷 - 날아가는 파리 손으로 움켜쥐듯 찍었다. 어제도 그러했으므로 오늘도 그러하고 내일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일상 저 곤한 노동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중전에 떠 있는 저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야 하기에 "저 놈의 해는 머슴도 안 살아봤나?" 푸념도 하고 "좀 쉬었다 하세나" 참으로 나온 열무김치 안주삼아 탁주 한 사발의 술기운으로 덜어내기도 하고 더러는 "아나 농부야 말 들어" 신명 좋게 뱉어내는 가락 따라 부르다 보면 사래 길었던 밭고랑도 둑에 다다르고 긴긴해도 늬엿 서산으로 넘어갔다. 이제는 "끼니걱정"없이 먹고는 산다는 생각에 이전보다 다소 여유가 생겼지만 저 밭에 열 지어 고랑따라 손 놀려가며 심고 가꾸는 "어머니들"의 거룩한..

제주에서 한 달(최종회)- 천국으로 가는 계단 영실

두어 번 다녀간 길이고 산이기에 만만치 않다는 생각으로 발만 보고 오르다가 문득 뒤돌아 본 걸어온 길이 저랬고 앞으로 가야할 길 올려다 본 풍경이 저랬다.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란 영화도 있었고 소설도 있었다. 그만큼 계단 딛고 오르는 아름다운 길이 예말고 또 있다는 얘기겠지만 그곳이 어디에 있건 이보다 더 할 수는 없을거라했다. 넋을 놓은 사람은 비단 나뿐이 아닌듯했다. 작금 날씨가 고르지 못했고 어떤 날은 비가 온다하여 배낭을 매지 않은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은 대개가 병아리 오줌만큼 찔끔 내린 비로 하루를 공친데 대해 속상해했다. 모레면 이제 뭍으로 가야하는 날이었고 요행이 날씨가 좋았다. 늦은 삼월 두어 차례 반쯤 눈 녹은 이 길을 나는 좋아했다. 그때 그 길이 가을에 이런 모습으로 단장하고 나..

제주에서 한 달(12)- 저지오름 가는 길

서쪽으로 방향잡고 버스타고 가다가 월령삼거리에서 내렸다. 딴엔 저지오름을 향하여 반시계방향으로 돌아보겠다는 심사였다. 밭에서 일하는 아낙 하나 눈에 들어온다. 친정에 다니러 온 “시집간 딸”일까? 시댁에 댕기러 온 며느리 일까? 지루하게 냇가 따라 올라오다 그림이 달라지니 별것에 다 관심이 간다. 스스로 “메누리”라 짐작했다. 친정에 온 딸이라면 당연 친정어머니 “몸빼”라도 걸쳐 입고 밭에 나왔을 터 등산복 차림에 “몸 붙여” 일하는 폼새가 아니라 딸은 아닐 것이라 생각됐기 때문이다. 제주 곳곳이 절경이고 비경임엔 더 말해 무엇하랴만 저렇게 고랑따라 일구고 가꾸는 사람의 흔적이 비로소 그 절경에 비경의 완성도를 높인다. 정말 많이 걸었다. 그보다는 생각했던것 보다 저지오름이 멀리 있었던 것이다. 200여..

제주에서 한 달(11) - 동쪽 끝 성산

언제 어디로 갈 것인가는 정한 바 없으나 제주에 머물 날도 그리 많지 않으니 동쪽 끝까지는 가봐야겠다는 조바심이 한몫 했을 터이다. 수모루, 고래왓, 여의물, 광대왓, 반찬모르, 속도르, 어두모르, 뒤통모루 등 어원을 짐작키 어려운 정류장을 몇 개고 지나 가까스로 도착한 성산일출봉 오래전 이곳을 찾았을 때 가랑비 내리는 날 우의입고 정상에 올랐으나 구름이 풍경을 가려버렸던 곳 중국인민들의 경상도 토속어를 능가하는 억양과 무시무시한 데시벨로 귀청 나갈까 걱정했던 곳 지금은 저렇게 조용한 아침 인적마저 뜸하니 자연 사위가 조용하다. 경사가 곡하기에 계단에 의지해 천천히 올라도 숨이 가빠오는데 괴물이란 우리말보다는 몬스터라는 외래어로 표현하는것이 낫겠다 싶게 괴물은 괴물이로되 무섭지 않은, 마치 대개의 사찰 ..

제주에서 한 달(10)- 살았거나 죽었거나 모슬봉

11코스를 이어서 걸어야겠기에 버스타고 가다가 대정여고 앞에서 내렸다. 바닷가 파도소리 들을 만큼 들었고 아기자기한 항구의 모습 볼만큼 봤다는 생각에다가 내륙의 작은 오름이나 평원의 들 판 길 걷는 재미에 매료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길 잘했고 올레길에 정상적으로 진입했다는 반가운 표식을 확인하고 안도하면서 방향잡고 걸었다. 모슬봉 오르는 길 양쪽으로 눈에 띄기 시작하는 무덤들 밭머리에, 심지어는 밭 가운데 흔하게 눈에 띄는 무덤들을 보면서 저승길이 멀다더니 대문 밖이 황천이라는 말도 있거니 와 이쯤되면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묘한 분위기이다. 한편으로, 나름 좁은 땅에 평생 밭 일구며 살아가다 일 끝내고 누울 자리마저 밭을 떠나지 못하는 제주의 옹색한 땅 때문일까? 그런데 모슬봉을 오를수록 눈에 띄는 무덤..

제주에서 한 달(9)- 섯알에 새겨진 제주의 아픔

송악산 전망대에서 내려와 오른쪽으로 남은 길 가다 되돌아보면 그린듯 아름다운 길 걸어왔다는 사실에 놀라고 목 좋은 쉼터에 앉으면 가파도와 마라도가 손에 잡힐 듯 눈앞에 있다. 마음이 맞아 여기까지 왔을 터이고 좋은 시간, 좋은 장소에 달리 할 말이 따로있겠나! 그저 “우리 여기 오길 참 잘했다 그치? 담에 또 오자!” 송악산을 한 바퀴 거진 돌았을 즈음 섯알오름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바닷가 절경의 잔상이 아직 눈앞에 어른거리는데 몇 걸음 옮기다 보면 의외의 목가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다크투어리즘 - 전쟁, 학살 등 비극적 역사의 현장이나 엄청난 재난과 재해가 일어났던 곳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기 위 해 떠나는 여행을 일컫는 말이라 적혀있다. 태평양 전쟁 말기 일제가 저항기지로 삼고자 알뜨르 비행장을 건설..

제주에서 한 달(7)- 버치냐?

외돌개에서 쇠소깍 방향으로 이어 걷기로 했다. 정방폭포에서 가까운 정류장에서 내려야했는데 두어 개 지나쳤다. 길을 잃었다는 순간의 당혹감은 조용하고 깨끗한 도심의 아침풍경에 금방 잊었다. 바닷가쪽으로 어림짐작 방향을 잡았는데 햇살을 등지고 걸어오는 유니폼 차림의 노인과 마주쳤다. "이고 진 저 늙은이 짐벗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늘 돌인들 무거우랴! 늙기도 서러워라커든 짐을 조차 지실까" - 송강 - 과학문명의 발달은 노인들이 이고 진 짐을 모두 내려놓게 만들었다. 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는 법 경험과 경륜을 바탕으로 젊은이들을 가르치고 존경받으며 세상을 이끌었던 시대는 가고 이제는 젊은이들에게 묻고 배우며 세상의 변화를 따라잡아야 하는 더 큰 짐을 지게되었다. 와중에 저렇게 깔끔하게 유니폼을 갖춰입고 ..

제주에서 한 달(6) - 걸어서 외돌개까지

약천사 다람쥐 쳇바퀴 돌듯 세 바퀴 반을 헤매다 좁은 문으로 빠져나오니 세상은 넓다. 곳곳에 비닐하우스가 눈에 띈다. 따뜻한 남쪽지방에도 더 따뜻함이 필요했을까? 보다 더 일찍, 혹은 보다 더 많이 거두기 위한 사람들의 욕망은 트랙터와 함께 멈춰 녹슬어감에도 녹색 식물의 생명유지 욕망은 전기계량기함까지 채워졌다. 길은 결국 약천사를 거쳐 다시금 바닷가로 나 있었고 이즈음에서 7코스로 접어들었다. 선교사의 집이라 간판이 붙었다. 회색빛 시멘트만 어찌하면 천사의 집으로 바꾸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앙증맞은 포구에 언덕위의 집은 작은 왕국으로 보였다. 다가가 들여다보기엔 사위가 너무 조용해 지나쳐 가기로 했다. 차타고 다니지 말고 천천히 걸으면서 즐겁게 놀다가라함에도 그리하는 사람들이 그리하지 않는 사람..

제주에서 한 달(5)- 뭔이 중헌디?

숙소에서 야트막한 내리막길 따라 육백 미터쯤 내려오면 중문 관광단지다. 올레 8코스를 접할 수 있는 곳이기에 맵을 확인하며 성산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비밀의 문같이 좁은 입구를 지나자 숨겨놓은 듯 한 풍광이 들어온다. 시작이 좋다. 느낌이 좋으니 발걸음이 가볍다. 신나서 걷다보니 자전거 타고 왔던 그 길이다. 올레길은 바닷가로 난 것이 아닌가? 맵을 확인해보니 경로를 이탈했다. . 올레길 곳곳에는 저렇게 홍,청색의 화살표 표식과 리본이 걸려있다. 시계방향으로 돌면 청색 리본과 화살표를 반 시계 방향이면 오렌지색 리본과 화살표를 따라 가면된다. 잠깐 한눈파는 사이 지나치기 일쑤였고 맵을 확인해 가며 되돌아오면 영낙없이 저런 표식을 못보고 지나친 것이다. 적응이 되자 쉽게 눈에 띄고 내가 제 길로 제대로 ..

제주에서 한 달(4)- 바람불어 더욱 좋았던 새별오름

어제 송악에서 돌아오니 와이파이가 먹통이었다. 흔히들 권장하는 리부팅도 해보고 공유기에 연결된 케이블 선을 뺏다가 끼기도 수차에 걸쳐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이튿날 곧 10월 2일 오전중에 기사가 방문한다하였다. 과연 11시쯤 젊은 기사가 왔다. 나름 하는데까지 해봤지만 소용없더라는 내 얘기를 들으면서 기사가 다가가 공유기 일 미터 전에서 손에 들고있던 휴대폰에 와이파이가 살아났다. 비명을 지르듯 환호성을 지르자 "전 손댄 거 없는데요" 젊은 기사는 서양영화에서 노랑머리들이 흔히하듯 양팔을 어깨높이로 올리면서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가려하다가 공유기 뒤편 연결선을 꼼꼼히 들여다 보더니 케이블 끝 단자 걸림 작용을 하는 부분이 떨어져 나간것을 발견해 냈다. 고객님들이 괜히 A/S 부르지는 않더라고요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