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호천에서 부르는 노래

부모산 이야기 이거나 복숭아 이야기

조강옹 2019. 12. 24. 09:06

 

추석 이튿날  늦은 아침 챙겨먹고서 안해와 같이 미호천 다리를 건넌다.

저 멀리 보이는것이 부모산이다.

전에 살던 동네에서 아침이면 해가 돋는 곳

 

"부모산 아침햇살 널리퍼지고.."

중학교 교가 노랫말의 시작이 이렇다 보니 우리 민족의 영산은 백두산이요

(옥산)면민의 산은 부모산이라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것이다.

 

누군가 또 묻는다.

그럼 일백오십만의 충북도민의 영산은 어드메냐고

두 말 할 나위 없이 속리산이라고 친절하게 답해준다. 

 

오늘 한가하니까.....

 

초등학교 오학년 시절

구름 잔뜩 낀 흐린날이었다.

담임이셨던 정덕환선생님따라 부모산에서의 소풍을 마치고 이 다리 건너오면서

"소풍 날 한번 참 잘잡았다." 나를 돌아보시며 말씀하시던 곳이 바로 여기 이쯤이었다.

 

 

"앞 들을 달리는 미호의 흐름

자꾸 자꾸 가면 바다에 닿지...."

한편 초등학교 교가의 노랫말은 이렇게된다.

 

어린시절 백사장 따라 한껏 줄달음 치기도 하고

손으로 모래 파 내고 밀대 꽂아 물 마시던 곳

70년대 "공업입국"의 기치 아래 심한 몸살을 알았지만 이제 가까스로 나아져

쏘가리가 루어낚시꾼들의 가짜 미끼에 속아 올라오기도 하는 곳  

엊그제 내린 비로 물색마저 좋아져 제법 강다운 면모를 갖췄다. 

 

청주역 건널목 건너자 마자 내 구역이라는 듯 턱하니 가로막고 서 있는 건물

그리 큰 동네가 아닌데 상대적으로 크게 지은 예배당

"여호와께서 기도 들어주려 오시다  못마땅해 하시며 돌아가시면 어쩌나"

오지랖 넓은 걱정 한번 해본다.     명절끝은 이리 한가하다.

 

이 땅이 거슬러 올라가면 한때 신라의 영토이기도 했으려니와 솔거의 후예가 있어 벽에다 그림을 그렸다고 생각했다.

복숭아를 임시 저장하는 창고인데 이 집의 큰아들이 그림 그리는 재주가 남달라

그렸다고 한다.  이집 출입이 근 십년 가까운데 참새고 복숭아고 제 자리를 지킨다.

꽃중에 아름답지 않은 꽃이 어디 있겠나만

굳이 꼽으라면 붉은 꽃이고  게중에 작은 꽃을 들여다 보면 으뜸이라는 생각 잠시한다.

 

누구는 가을이 아직 오지 아니했다하고하나 동부는 스스로 햇살에 말라가면서 가을을 맞는다.

꽈리....

 

왜 그랬는지를 애들한테 설명할 방법이 없지만 어린시절 누나들이 참 좋아했다.

장독대는 늘 뒷곁에 있었다.

수시로 날아들던 아이들의 짱돌을 피해 자리잡은 탓이려니...

가을은 이미 여기에도 와 있었다.

 

그 뒷곁은 과수원의 시작이었다.

그 무덥던 여름을 잘 견딘 복숭아 나무들이 가을 햇살을 받기 위해 열지어 서 있다.

 

가만 들여다 보면 수줍은 듯 잎새뒤에 숨어있는 복숭아

아무리 꽃이 이쁘기로 서니  또한 그중에 으뜸이 도화이기로 서니

이 열매 보다 더 그리하기야 하겠는가? 

 

솜씨좋은 큰 아들의 작품 하나

 

솜씨 좋은 큰아들 작품 둘

 

 

 

 

울 안으로 보이길래 찍었다.

유자....

남몰래 좋아했던 초등학교 시절 내 짝궁의 집 울안에도 유자가 이렇게 열려있었다.

 

가만 생각하니 유자는 의구한데 짝궁은 간데없다. 

 

기구한 운명이 너 말고 또 있으랴

꽃은 꽃이로되 꽃으로 대접 한 번 제대로 받아보지 못하고 너를 열어

한 해 여름 겨우 넘기고 늙어가야하면서 늙은이 대접 또한 제대로 받아보지 못하는 너의 운명 

 

서두에 근 십여년 이라했다.

이 도원에서 복숭아나무 가꾸며 살아온 여인 

이웃에 마실 온 영감님과 더불어 옛이야기 듣는다.

음성 어디쯤이 시댁이라했다.

남편은 키가 훤칠한 미남에다 어디라 하면 누구나 다 알만한 몀문대 출신으로 남 부러울것이 없었는데  사람이 그랬던지 사람아닌 누가 그랬던지 시샘이 있었던 모양이다.

 

남편은 폐인이 되었고 가세는 기울어져 시부모 따라  이곳으로 찾아든 것이 꼭 삼십년 전이라 했다.

세월은 흘러 그간 시부모 모두 세상 떠나고  삼년전이었던가?

사람도 제대로 몰라보던 허우대 좋은 남편과도 사별했다.

두 아들은 아버지의 젊은 날 처럼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 나와 도회지에서 잘 산다고 했다. 

 

홀로 복숭아 농사 지으면서 이렇게 산다고 했다.

근 십년지기이니 자매인 양 친해진 안해와 실컷 수다떨고 이제는 가야할때

"고만 담아라"   "더 갖고 가라"  서로 양보없는 실갱이는 돈 건넬적까지 이어진다.

배춧잎 하나 더 얹어 건네려는 안해와 이만하면 됐다하는 주인과  실갱이를 보다 못한 이장이 거든다.

 

"올 여름 날씨도 무던히 더웠는데 힘들게 농사지으신거 그냥 가기 어려우니

다음번엘랑 덜 받으시더라도 요번엘랑 제대로 받으소서!"

 

 

 

부모산!

임진왜란때 의병이 왜군에 쫒겨 산으로 올랐다했다.

물이 없어 어려움을 겪던 의병장이 때를 가늠하여 하늘에 기도했다했다.

홀연 산 꼭대기 거짓말 처럼  샘이 생기고 물이 "샘솟듯" 했다한다.

그 샘물 마시고 비로소 기운차린 의병이 왜군을 격퇴했다는 전설이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부모와 같은 은혜를 지닌산이라 하여 부모산이라 불리운다고 한다.

그 초등학교 소풍 때 올랐던 부모산 꼭대기에 정말 물고인 웅덩이 하나 있었고 소나무 한 그루

초병인양 서 있었다.

 

그 부모산 자락

도원이 하나 있고 조석으로 찬바람 부는 이즈음이면 

해마다  복숭아 가질러(사러) 다닌지 얼추 십년이다.

 

"내 칠십평생 이렇게 맛있는 복숭아는 처음이다."

"그렇지요  제 사십평생 이렇게 맛있는 복숭아 또한 처음이옵니다."

 

십여년전 우리 모자의 말씀이고, 말이고 보니 딴은 이웃에서 마실 온 영감님

이장의 나이 추측ㅎ건데 40 좀 넘었거나 ......

이장댁의 나이 추측ㅎ건대 설흔은 안된것이 분명하고.....

맨정신에 이리  짐작이 빗나간 연유가  부모산 정기받고 자라난 복숭아 나무에서 열린

복숭아 장기간에 걸쳐 먹어 온데 기인한것은 아닐런지............

 

그렇거나 그러하지 아니하거나 

혀가 맛보고 혀가 이르기를    

 

 "이 복숭아 만큼은 가히 천하 일미로다!"  하니

 

아니믿고  어쩌리요?!

 

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