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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천하8-맥적산

가야 할 길이 멀다기에 일찍 숙소를 나섰다.아침부터 부지런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새벽시장거쳐 가다 아침으로 저 장떡 비슷한 것을 먹었다.거부감 제로에 맛도 장떡과 흡사해서 먹기에 좋았고 그만큼 속도 편했다.버스 터미널에서 시험 삼아 저 아재들에게 전화기 번역기를 들이밀며 화장실 위치를 물었다.단 한 마디 말도 없이 화장실 있는 쪽을 손가락질로 가르쳐 주었다.자기들끼리는 언성 높여 대화하며 이리 다소곳한 이유를 모르겠다.다만 번역기가 유효하다는 사실 하나 확인했을 뿐이다. 버스로 한나절 끝에 도착한 곳신장 쪽이 가깝다고 했던가?점심 먹으러 들어간 식당의 아낙 모습이 저러했다.백옥같이 하얀 피부에 훤칠한 키, 사위가 하얗게 아우라가 일 정도로 뛰어난 미모인지라잠시 음흉한 마음으로 몰카로 찍었다. 한쪽이 열리면..

주유천하7-문현천지

내 생애 언제 이런 곳에 다시 올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 오는 첫날부터 메모를 했다.천장 낮은 열차안에서도 숙소에서 룸매이트에게 방해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휴대전화기로 불 밝혀 가며 오늘 아침부터 이동 중에 스쳐 지나가는 풍경에 대한 느낌까지 꼼꼼하게 기록했다. 이 다음 사진 바라보며 정리하고 편집하고 해서 두고두고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은모든 일정을 마치고 북경으로 오는 열차 안에서도 이어졌다. 그런데 열차에서 내릴 적 배낭을 올려놓은 3층 침대칸 발밑에 있는 소지품 빠짐없이 확인하고 또 확인해서 내렸건만 공항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깨달았다. 머리맡에 마지막 순간까지 메모하고 그냥 베갯머리에 그대로 놓고 내렸음을.이렇게 허무하고 이렇게 맹랑한 일이... 다리에 힘이 빠지고 주저앉..

주유천하6-문현으로 가는 길목

전날 버스를 예약했기에 운전석 바로 뒤에 자리를 잡았다.그런데도 중국 인민 아낙과 홍콩영화에 나오는 양아치 유형의 인민이 무어라 큰 소리로 떠든다.아마도 자기 자리라 우기는 것 같은데 기사가 와서 표를 보여 달라하더니 안으로 들어가라 몰아대듯 얘기하자 슬금슬금 멀어져 같다.버스는 70년대 버스처럼 유리창이 심하게 흔들렸고 가는 곳곳마다 차가 서고 사람이 타고 내리고 짐을 싣고 내리기를 반복한다. 추월할 때 추월한다고 빵 (나 추월하니 양보 좀 해)아니다 싶은데 추월할 땐 빵빵(내가 추월하는데 좀 미안해) 커브 길에 마주 오는 보이지 않은 차량한테 빵빵(내가 가고 있으니 혹 거기 있걸랑 속도 좀 줄여)버스 정류장이 다가오면 빵빵(잠시후 버스가 도착하니 늦지않게 탈 준비 해) 다섯 시간길고 지루한 이동 중에..

주유천하4-련보엽칙

거듭 느끼거니와 이곳의 야크나 염소는 우리의 상전이다.가는 길 곳곳에 무리지어 길을 건너면 하릴없이 기다리거나 뒤를 쫒아 길을 내야만 했다.오늘의 일상도 내일의 근심도 일도없는 불교 가르침 그대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무아의 지경에서 살아가는 것은 신심 돈독한 불자가 아니라 이곳의 야크며 염소아니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밤새 전기차 운전자와 협의하여 운전자는 돌아가고 새로이 택시 하나 전세를 냈다고했다.창밖의 풍경은  "산곳곳 물겹겹 아름다운 내 나라여!"자화자찬의 우리 국토예찬이 머슥할 정도로 보기 좋았다.그래도 척박해서 겨우 염소 풀이나 뜯어먹고 사는 땅인걸 자위해 보지만 내내 부러움과 시샘의 대상이었다.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서릿발 칼날진 ..

주유천하3-감가비경 그리고 샤하석림

어제는 난주에서 4시간을 달려 병영사 그리고 다시금 한참을 달려 라브랑스 사원북경에서 17시간 열차를 달려 서쪽으로 왔는 거리가 1800킬로미터그러다 보니 200킬로 미터 거리는 지척이라 마실 다닌다는 것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감가비경- 풀어서 감가라는 지역의 아름다운 풍경이라 한다.이동중에 찍은 사진 두 컷  전망대로 오르는데 약간의 고산증 증세로 여겨지는 어지럼증이 스쳐 지나갔다.평지에선 볼 수 없는 그러나 조금만 높이 오르면 내어주는 풍경이다 보니 비경이라 아니할 수 없겠다.눈에 들어오는 풍경을 통째로 카메라에 담을 수 없다는 아쉬움이 결과물을 볼수록 더해간다. 그리고 나서 이동중에 병풍처럼 정말 병풍처럼이라 표현할 수밖에 없는 산이 점점 다가온다.그쪽으로 다가간다는 이야긴데 더 ..

주유천하2 - 병령사에서

오는 길에 길가에 노천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위생상태가 그리 좋지 않아 스스로  "개밥"이라며 웃었다.그럼에도 어제 북경에서 고수가 들어간 국수보다 맛나서 나름 만족했다. 경치가 기막힌 곳이라는 거 말고는 아는 게 없이 어딘지 모르고 간다.가는 길이 엇갈렸는지 중국인 기사와 인솔자간 언성이 높아지는 소리에 졸며 가다 깼다.목적지를 확인하고자 잠시 들른, 공원이었다.와중에 화장실이 급해 찾았다가 기겁을 했다.화장실은 숨 쉬기 조차 힘들 정도로 악취가 진동하였으며 작은 날파리들이 떼지어 날고 재래식 변기였다.간신히 볼 일을 끝내고 앞으로 이 문제가 반복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기에 휴지를 준비해야겠다 생각했다.   맑은 물에서 배를 타고 한참을 가는데  점점 다가갈수록 탁류로 변했다.나루에  내리자 비경이 눈..

회룡포에서 부치는 편지

모르며 살기로 했다. 시린 눈빛 하나로 흘러만 가는 가을 강처럼 사랑은 무엇이며 삶은 왜 사는 건지 물어서 얻은 해답이 무슨 쓸모 있었던가 모를 줄도 알며 사는 어리석음이여 기막힌 평안함이여 가을 하늘빛 같은 시린 눈빛 하나로 무작정 무작정 살기로 했다.  - 유안진의 작정 전문 - 일에서 손 뗀 지 다섯 해 언제부턴가 무작정 살기로 했으면서도 시인의 노래처럼 기막힌 평안함은 없는 듯하였습니다. 작년 내내 허리 통증으로 고생하다 연말쯤 되어서야 뒤늦은 판단과 결정끝에 허리뼈 어디쯤 드릴로 구멍을 뚫고  튀어나온 디스크를 태워 없애고 나서 소걸음으로 십 리 길 가듯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나아졌습니다. 한 해를 그렇게 보내고 맞이한 올여름은 지독시리 더웠기에 도리없이  병든 개처럼 혓바닥 길게 내밀고 헐떡거리..

아주 늦은 답신

자고나면 벌판에 공장이 들어서고 벌집처럼 그만큼의 일자리가 늘어나던 시절 땀 흘려 일하면 하는 만큼 에누리없이 댓가가 주어지고 그래서 나름 열심히 살면서 결혼하고 자식 낳아 키우면서 내 집 하나씩 마련하고 비로소 꿈을 이루었다고 흡족해 하던 시절 농경시대에서 산업화로 들어갈 즈음이 내 청년시절이었습니다. 노태우정권이 내 걸었던 “보통사람들의 위대한 시대”를 실감하기도 했고요. 이어, 누구나 내 차를 가질 수 있어 원하는 곳을 날개 달린 새들처럼 자유로이 나다닐 수 있고 인터넷을 이용한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원하는 것 모두를 얻을 수 있는 지식정보화시대로의 전환은 조물주가 선심 쓰듯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내려준 요술방망이와 다를 것 없는 축복인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고나면 있던 일자리도 ..

삶의 편린 2024.05.27

사모곡 3 - 가을에 듣는 어머니의 기도

어머니! 두고 가신 땅에 두 계절이 바뀌었습니다. 꽃이 지는 계절은 가뭄이 극심했고 여름은 잔인했습니다. 엄청난 비에 여기저기 논 밭이 상했고 곳곳에 따라 농사를 망친 곳도 적잖았습니다. 그럼에도 어머니께옵서 두고 가신 이땅은 무사히 두 계절을 지났습니다. 일만 오천 년 전 구석기인들이 벼를 재배했다는 미호강변 소로리에서 제방을 따라 팔결교 쪽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다 세 컷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이른 봄 마을 어귀마다 불 밝히듯 노랗게 피어나던 개나리꽃들이 하늘에 별이 되어 머물다 소나기 되어 밤새 퍼붓듯 들판을 저렇게 물들였습니다. 비록 내 논이 아니어도. 내가 심은 벼가 아니어도 눈에 들어오는 저 풍요는 누구에게나 자연의 선물이요. 신의 축복인 듯합니다. 줌을 당기고 밀기를 반복하면서 저 들판 어디..

사모곡2- 이승에서 여쭙는 안부

어머니! 어디, 머물고 계시는지요? 가시고 나서도 꽃이 피고 꽃이 지고 또 꽃이 피는 꽃들의 전갈 같은 “티벳, 사자의 서”를 읽었습니다. 가신 지 49일 되시던 날 어머니 흔적을 찾아 봉영당 돌집에 누나 가족들과 모였습니다. 아내는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조율이시 어머니께서 생전에 조상 위해 차리시던 상을 흉내 내 아내가 상을 차렸습니다. 조카들도 다 공감하라 마음을 담아 어머니를 그리는 글을 읽었습니다. 다 같이 눈시울을 적시고 돌문을 닫고 어머니와 작별하면서 다시금 눈물을 지었습니다. 세상 떠나시기 전 며칠 어머니께서 감내하셨던 고통이 우리를 세상 내보내실 적 산고의 고통보다 더 컸던 것은 아닐는지 그리고 그 고통은 마땅히 남아있는, 남아있을 자식들이 덜어드려야 할 것은 아니었는지 어머니! 이제야 ..

삶의 편린 2023.07.11